학생 하나 없는 텅 빈 캠퍼스를 걸었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캠퍼스 뒷편의 동산엘 갔다

북한산이 눈 앞 가득 펼쳐지는 곳은 거기뿐이다

가지만 남은 나무 위로 가루같은 눈이 내려앉는다

오늘은 텅 빈 수묵화다

이럴때면 가끔씩 기형도란 사람이 떠올랐다

진눈깨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는 불행하다고 했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흘러 지나간다

...당연한 고독...평범한 불행...

처음 캠퍼스에 발을 디뎠던 봄이 떠오른다

맞지도 않는 외투를 입었다 벗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던 날들

여름이면 늘 설레는 일들이 일어났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입가에 흘러 넘쳤고

하루를 가득 메운 소나기를 편지에 담아 사랑을 전했다

그 땐 소주가 썼지만 참 많이도 먹었고

고삐를 푼 채 노래를 부르러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어느덧 오늘같은 수묵화가 펼쳐지고

모든 건 아련하게 멀어졌음을 새삼 느끼는 것이다

저 산 아래 어디에선가 혼자 오열을 토했던 적이 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별 일은 없었으며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하였다

손에 쥔 거라곤 커피 한 잔과 쓰다 지쳐버린 글뿐이란 걸 생각하면,

퍽 쓸쓸해진다

쓸쓸함도 지나치면 병이라는데 이 정도 되면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잔이 차갑다

남은 커피를 쭉 들이키고는 눈을 털었다

그러고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하는 것이,

문득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가장 훌륭한 요약인 것 같아 흠칫 놀랐다

내가 아는 가장 적막한 침묵이 내린다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오늘도 두 발은 땅에 닿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