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안녕하세요.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 졸업을 한 이 시기에 드는 여러 가지 생각과 사생들에게 전하는 말들을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봅니다. 저는 약 2년간 학사에서 거주하였고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사회혁신 전공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지난 8월 21일 졸업을 한, 304호에 거주 중인 서정우입니다.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사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좀 불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사가 대학원생들에게도 열려 있는 곳이지만, 염연히 학업 중인 청년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신앙생활을 위해 마련된 터이기에 저 역시 사생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학사에 신사생이 많이 오지 않았고, 방도 여유가 있었던 점과 제가 대학원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러 일로 여러 학교에 드나드는 일들로 말미암아 장로님께서 올해 말까지 허락해주셔서 이렇게 서울살이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올해 대학원 시험이 있지만, 반 년만에 공부를 마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년 12월에 있는 시험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기에 심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이런 호사도 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집에서 공부하게 될 예정인데, 이 학사가 참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만, 떠나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 무거운 응어리가 얹혀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2018년 초에 학사에 입학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학사라는 게 존재하는지 몰랐습니다. 재수할 때 다른 학사에서 거주하긴 하였지만 학원과 연계 되어있는 형태에서 대학생들을 위해 기숙사가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 주거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는 자취와 기숙사를 항상 반대하셨었습니다. 제가 몸이 안 좋은지라 혼자 살게 되면 밥을 사 먹거나 먹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면 몸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엄격하게 자취제의를 거절하셨고, 경제적인 상황도 쉽지 않았기에 저 역시 무리하게 조르기 어려웠었습니다.그런데 5학기가 끝나갈 때 쯤, 정말 우연히 학교 홈페이지에서 사생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마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것과 아침저녁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남학생 전용 학사라는 점이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였나 봅니다(물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학사 면접 날짜에 다른 일정 차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미리 메시지를 보내두고 혹시 다른 날짜에 면접을 봐도 되냐고 편의를 구했지만, 답장이 없었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학교에 세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고, 한강도 가까워서 합격하고 싶었는데, 일정 문제로 인해 기회가 날라간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3년 내내 기도하면서 서울 생활을 구한 것이기 때문에 문턱 앞까지 온 소망이 날라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보셨던 건지, 아니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정 후에 연락이 왔고, 2월 말에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설날 후로 기억하는 데, 새해 선물을 받은 것 같았고, 새로 시작하게 되는 전공으로 인해 학교에 밤까지 있을 일이 많아졌는데, 하나님이 좋은 보금자리를 주시고 편하게 공부하라고 보금자리를 제공해주셨던 것 같아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아쉬울 지 언정 끝까지 기다렸을 때에 좋은 열매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그런 입사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굳이 이 이야기를 전달해드리고 싶은 이유는, 저처럼 입사면접날짜에 상황상 참석할 수 없을지라도, 혹 다른 이유로 불편을 끼칠 수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부딪히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새로 들어올 사생들,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들어오게 될 분들에게, 모든 사항은 규정대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포용할 수 있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생들에게는 학교 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문턱을 보고 높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부딪혀보길 바랍니다. 제가 새로운 전공을 지원하게 된 것과, 거기서 인턴을 하게 된 것, 유럽으로 파견을 다녀오고, 지금도 이렇게 학사에 거주하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 모두. 참 어렵고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다만 끝까지 매달렸고,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은혜의 열매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취업과 같은 공정성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사회에서는 논외의 이야기이겠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조금은 숨이 트인 이 시기에 자유롭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붙잡고 매달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작년 가을에 어떤 글을 여기다가 올렸던 것 같습니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망설이지 말고 부디 평안하고 담대하라는 취지의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그 글을 살아내려고 일 년을 요동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저의 대학 생활 전체가 그러하였습니다. 때론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여 나 자신이 위선으로 가득 차있을 때도 있었고, 그런 자신이 용서가 안될 때면 어디든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의기양양해지다가 교만해지기 까지 하는 그런 시기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른들이 보면 참 귀여운 일이다, 라고 하겠지만 사회로 들어가기 앞서 마음을 붙잡고 흔들리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아등바등 참 노력을 많이 해온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많이 다르진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생들과 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기를, 실패할 것을 알고도 달려들기를, 그러다 힘들면 쉬어가기를. 미리 예측하고 움직이는 냉철한 이성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우직하게 한 길을 가고, 때로는 어리석게 여러 길에서 망설이다가 돌아가기도 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우린 모두 올곧은 직선을 그리고 싶어하고 그 궤적이 휘거나 꺾여질 때 낙담하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을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스승이 한 말입니다 ㅎㅎ)

 

학사는 그런 곳이고, 제겐 그런 곳이었습니다.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을 이겨내야 할 곳이고, 공부의 막막함을 성실함을 뚫어낸 치열한 현장이었고, 인간관계와 학교의 일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는 장소였습니다. 나의 생각이 굽혀지기도 하고, 나의 내면의 어두운 장소도 보기도 하고, 반면에 기쁨과 안식을 누리는 그런 장소 말입니다. 교회까지 옆에 있으니 밤에 언제든 가서 소리내어 기도할 수 있고, 때론 방에서 숨 죽인 채 기도하며 흐느낀 그런 곳입니다. 앞으로도 몇 개월간 제게 그런 장소이겠지요.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허와 실을 따지고 장단을 평가하며 이게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학사 생활을 하게 해준 통로된 교회 공동체와 부모님께 감사하며 대학 생활을 잘 헤쳐가고 또 매듭 지으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겐 이 곳이 굉장히 소중한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조금 좋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학사가, 어쩌다 보니 더 많이 좋아하게 되어버렸네요. 고마운 사생들, 고함치고 장난치는 절 받아준 3층 인간들, 함께 숭덕제 준비하는 이 시기에 기다려준 임원들, 매일 아침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건하게 해주시는 목사님, 배부른 식사를 언제나 제공해주시는 집사님, 그리고 장로님에게 감사 말씀 전합니다. 장로님을 볼 때면 오래된 고독 나무 같습니다. 금호동 언덕에 마당에 있는 나무가 장로님을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 속에서 신앙을 지키시고 전해주시는 지혜로운 일들을 들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세를 배우고, 사생들을 아끼시는 그 마음을 당연하게 받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저뿐 아니라 이곳을 스쳐 간 모든 인연들이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시기들을 돌아보며 참 많은 고마움을 이곳에 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학생으로서 이곳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고, 경건 생활과 학업 생활을 배우고 본받으며 많은 것을 얻고 누리게 되어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한 해도 열심히 학사 생활 하며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졸업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참아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살아내며 부끄럽지 않은 사생으로 살아가도록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