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살전 2:1-8 설교:‘복음 전파의 현장’
7월은 교육의 달입니다. 여름수련회를 갖지 못하더라도, 평소보다 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자주 바라보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참 성도로 자라가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에‘그들은 젖만 먹으려 하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그런 교인이 되어선 안 되지요. 예를 들면,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은, 환난에도 즐거워하는 겁니다. 좋은 믿음을 보이면, 주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요, 복음이 주는 참 복을 받아 누립니다.
오늘 나누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 당시 복음 전파의 현장을 바울이 잘 적고 있지요. 말씀을 살피며, 복음을 전한 분들과 들은 분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좋겠습니다. 시작에‘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아나니’바울이‘너희가 아나니’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한 때를 회상하면서, 복음이 전해져 그들이 큰 은혜와 유익을 얻은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안다는 거지요.
우리도, 자신이 예수를 믿어 누리는 유익을 살펴야 합니다.‘난, 그저 교회에 다닐 뿐이야.’아닙니다. 한 예로, 믿는 이가 살면서 누릴 가장 귀한 것의 하나가 평안인데, 내 삶에 평안이 있는가? 이때 우리가 알 것은, 예수를 잘 믿어 염려가 없어져 평안이 아니라, 누릴 천국을 소망하며 염려하지 않으니 평안입니다. 그러니, 믿는 자는 어떤 형편에도 평안히 살아야지요.
바울이 말한, 빌립보에서 겪은 일을 살핍니다. 지금의 터키 쪽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 일행이, 바다 건너 유럽 땅에 들어가 처음 들린 곳이 빌립보시지요. 다른 곳처럼, 유대 회당을 가려 했으나, 회당이 없었고, 유대 여인 몇이 안식일에 강가에 모여 예배드림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찾아가 예수 복음을 전했는데, 받아들인 이가 루디아였지요. 함께 행 16:14을 읽습니다.‘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루디아는 고향인 두아디라에서 나는 자색 옷감을 빌립보에 가져다 팔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이 그녀 마음을 열어 따르게 하셨지요. 그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고, 루디아의 권함으로 바울 일행이 그 집에 머물며, 안식일엔 그녀 집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길을 가다가,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났지요.
그녀는 바울 일행을 따라오며‘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그녀 말은 옳지만, 귀신의 말이라 바울이 괴로워, 그녀 안의 귀신에게‘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자,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귀신이 나가니, 여종이 점을 못 치자, 돈벌이를 놓친 주인이 고발해서, 바울과 실라는 매 맞고 옷이 찢기고 옥에 갇혔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옥 안에서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니, 옥의 죄수들이 다 듣습니다.
그때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자, 잠자던 간수가 깨어,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자살하려 하지요. 당시는 죄수가 도망치면, 간수를 고문한 후에 죽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소리쳐‘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 앞에 엎드려‘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습니까?’바울이 대답한 행 16:31을 읽습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짧지만 확실한 말씀이지요. 바울은 간수의 집에 가, 복음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 집에 가서 형제들을 만나 위로를 받고 빌립보를 떠났지요.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린 것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지 않고 능력으로 전해진 것이지요. 또,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것은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게 합니다. 2절에‘고난과 능욕을 당했으나 우리 하나님을 힙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복음을 전하며 겪는 어려움을, 하나님의 도우셨지요.
우리 삶에 마음에 담고 따라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이 아니라도, 살면서 힘들다고 낙심하거나‘재수가 없으려니, 누구 때문이야.’하지 말고,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자신의 부족이나 잘못은 고쳐가면, 주님이 기뻐하시며 도우십니다. 성도는 주님의 도움을 느낄 때, 감사 찬양하는데, 여러분도 그런 체험이 있기 바랍니다. 말씀에, 바울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복음을 전했는지 적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들이 전한 복음에 간사함이나 부정함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요. 둘째로, 복음을 전하며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합니다.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마음도 다 아시는데, 그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니,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지요,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신다. 하나님이 아신다 합니다.
요사이, 교인들 마음에 드는 설교만 하고, 정작 해야 할 말은 안 한다고 하는데,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니, 성경 말씀을 제대로 설교해야지요. 셋째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도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 유순한 자 같았다 합니다. 사도로서 대접과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히 섬겼지요. 바울은 그것을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하였다 합니다.
유모는 돈 받고 남의 자녀에게 젖을 먹이며 키우니까, 자기 자식 같은 정을 주지 않지요. 여기서, 모세을 젖 먹여 키운 유모를 생각해 봅니다.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늘어나자, 바로 왕이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 명하였지요. 모세의 부모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렸는데, 마침 목욕하러 왔던 애굽 공주가 물에서 건졌습니다. 모세 이름의 뜻이‘물에서 건져냄’이지요.
공주가 아기에게 젖 먹일 유모를 찾자, 멀리서 보고 있던 모세 누나가 달려가 소개해서 친어머니가 유모로 갔지요. 친어머니가 모세를 젖 먹이며 키웠으니, 오늘 말씀의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지요.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모세 어머니가 모세를 기른 것처럼, 바울 일행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의무로 한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자기 자녀처럼 사랑으로 돌보았다는 겁니다. 그들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했지요. 왜 그랬을까요?
주 예수님이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영생을 누릴 형제자매이기에 그리 사랑했지요. 예수 믿음은 이처럼, 교회에 오가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생명이 달린 심각한 것입니다. 말씀이 나온 김에, 우리는 자녀들을 내 목숨까지 줄 정도로 사랑합니까? 그것은 어떤 사랑입니까?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인을 위해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했다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안 믿는 가족들이 영벌에 떨어짐을 심각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바울 일행은 말로만 아니고,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 힘든 일을 하면서 하나님 복음을 전하였지요. 넷째로,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거룩하고 흠 없이 행한 것을, 너희가 증인이고 하나님도 증인이라 합니다. 바울이 거룩하고 흠 없이, 그리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는 것 같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부르시고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함이지요. 훗날 주님 앞에 그리 서게 하고자 함입니다.
우리도 잘 배우고 행해서, 예수님 앞에 흠 없아, 거룩하게 서야지요. 신앙생활은 그런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 바울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서 능력으로 역사하지요. 요사이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 말씀이 말씀답게 전해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말씀 따로 삶 따로, 따로 국밥인데, 전하는 자가 잘못이야, 듣는 자가 잘못이야, 그래선 안 되고, 둘 다 말씀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전하는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것과 듣는 이의 마음과 귀가 열리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이는, 설교자가 준비 잘하는 것과, 자신의 귀가 열려서 깨닫고 행하도록 기도해야지요. 그러면, 복음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아! 말씀이 들리네.’
이때 우리가 마음 쓸 것은, 살기도 바쁘지만, 놀랍고 재미난 일이 많아서, 말씀을 읽고 들을 시간이 없으니, 깨닫고 변화되기 힘든 세상이지요.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14절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는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는 것 같이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예수 믿을 때 고난이 따름을 말하는데, 이 고난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은 육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영을 위한 것이고, 이 땅의 나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영생 천국을 위한 것이지요. 고난을 통해 육신에서 벗어나 영의 사람으로 변하며 천국을 소망하기에, 성도에게 고난은 유익합니다. 고난 당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위로의 말이자, 우리도 듣고 깨달으란 말입니다. 이 말씀은‘예수 잘 믿어 세상 복을 누려야지.’한참 벗어난 이야기라 합니다.
이어진 말씀은,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믿는 이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하게 함을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다 하지요. 바울이 이 말을 쓴 것은, 이 편지를 쓸 때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니 인내하며 이겨내라는 권면입니다.
말씀을 끝내가며, 바울은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다고 하면서, 바울이 한 번, 두 번 데살로니가에 가려 했는데 사탄이 막았다고 하지요. 성경 연구가들은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한 것과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몸이 아파서 못 간 것이라 합니다. 이어서, 바울 일행이 소망하고 기쁨으로 자랑할 면류관은, 재림하실 예수님 앞의 너희라 하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재림 심판의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이 바울의 기쁨이여 면류관입니다.
너희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며 끝내지요. 정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은 우리보다 훨씬 어려웠지요. 그러나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에,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온 그리스에 퍼질 만큼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본을 보인 바울과 일행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너희를 위해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한다에서, 복음 믿는 것이 그리 중함을 알고, 주위에 복음을 전하기에 힘써야지요.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것도 귀하지만, 우리를 통해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것이 더 귀합니다. 그러려면‘예수 믿으라.’는 말과 함께 믿어서 좋음을 삶으로 보여야지요. 오늘 말씀은 어떤 본을 보여야 하는지 잘 알려줍니다. 조용한 시간 성경과 주보를 함께 읽어 보세요. 여러분 모두 아름다운 성도의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리며,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