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살전 1:1-10 설교:‘신약 성경의 시작’
지난 주간, 6.25 전쟁이 일어난 25일을 지냈지요. 저는 어머니 등에 업혀 피난 다녔지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요, 동족이 서로 죽였으며, 우리를 위해 UN 16개국이 와서 도우며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6.25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나라 사랑하심을 확실히 보여주셨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나, 공산 치하에 살았을 겁니다. 나라를 위해 피 흘리신 선열들과 이 땅에 와서 희생하신 외국인들을 생각하며, 이 나라의 민주와 정의, 자유, 평화가 지켜지기 위해 기도합니다.
설교 제목을‘신약 성경의 시작’이라 한 것은, 신약 성경 27권 중 데살로니가전서가 가장 먼저 써졌기 때문이지요. 훗날, 신약 성경책을 만들면서, 사복음서, 역사서인 사도행전, 바울과 다른 제자들의 편지 순서로 했습니다. 예수 복음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마태복음 등 복음서를 앞에 뒀으나,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60년대, 요한복음을 80년대 후반에 쓰였는데, 데살로니가전서는 51년경에 기록되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약 20년 후입니다. 그 사이 복음이 그리스까지 퍼졌지요.
초대교회 때는, 교회, 지도자, 성경책이 없고, 베드로 등 제자들과 바울 일행이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지요. 구약성경은 비싸서 회당에나 있었으니 쉽게 볼 수 없었을 때, 바울 서신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나눌 데살로니가서는 기독 신앙에 알아야 할 것과 믿는 이로서 살아야 할 삶과 예수님 재림과 심판을 기록했기에, 여러 교회가 이 편지를 돌려가며 읽었지요. 다른 편지도 비슷합니다.
주 후 3백 년 말, 종교회의에서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해서 66권으로 결정되었는데, 성경을 읽으며 깨닫는 것이, 이천 년 전 사람이나 지금 현대인이나 비슷하지요. 그러니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말씀인 행 17:1-3을 함께 읽습니다.‘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 관례대로 그들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바울이 두 번째 선교 여행으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와, 처음 들린 곳이 빌립보시지요. 거기서 복음 전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은 후에, 두 번째 들린 도시가 데살로니가시로 도시가 크고 도로가 사방으로 잘 연결되어 많은 사람이 오가며 번영하던 곳입니다.
말씀은 편지라서, 쓴 사람, 받는 사람, 인사가 나오지요. 쓴 사람에, 바울을 이은 실루아노는 다른 곳에 실라라 나오는데, 실루아노는 로마식, 실라는 히브리식 이름으로, 행 15장에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로 인해 심히 다툰 후,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가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난 후, 머물며 교회를 돌보았기에 교인들이 잘 알았지요. 편지 받는 사람은 데살로니가 교인입니다.
인사말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은혜는 헬라인이, 평강은 유대인이 주로 하던 인사로, 교인 중에 유대인과 헬라인이 있었습니다. 평강은‘샬롬’인데,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독일이 유대인을 수용소에 넣고 가스로 학살할 때, 간수가 이름을 부르면 죽으러 가는 길임을 아는데도, 가는 자와 보내는 자가 서로‘샬롬’합니다. 죽음을 넘어선 평안이지요.
다른 하나는, 제가 성지 순례 때, 유대인은‘샬롬’인사하고, 아랍인은‘샬람’하는 것을 보고, 장난삼아 유대인에게‘샬람’아랍인에게‘샬롬’했더니, 그들의 인상이 굳어집니다. 조상이 아브라함 같고‘살롬’‘살람’인사말이 비슷한데, 유대인과 아랍인이 왜 죽어라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은혜와 평강을 둘로 나누지 않고, 주님 은혜로 평강을 누리라고 이해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은혜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리게 되었으니, 믿는 자는 평안을 누려야지요.
바울이 쓴 편지를 보면, 인사를 한 후에, 하나님께 감사한다며 교회를 칭찬하고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한 것은, 그들이 보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바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하지요. 믿음의 역사는, 믿는 이는 세상 기준으로 세상 따라 살거나 세상 위해 살지 않고, 믿음을 기준으로, 의롭게 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겁니다.
그렇게 살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아 천국 영생을 누리는 것이지요. 이 믿음이 약하면, 제대로 성도답게 살 수 없고, 환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믿음의 역사로 살지 못하지요. 가끔, 자신의 이 믿음이 확실한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이어 사랑의 수고인데, 수고란 말의 원어 뜻은 고통입니다. 이 본을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셨지요. 잡히시기 전날 밤 식사를 한 후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은 후‘내가 선생으로 이리하였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물론, 예수님의 사랑은 이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셨지요. 십자가에 죽을 수 없으니, 남의 발 씻는 정도는 하라는 것인데, 그것도 어렵지요. 힘든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이 사랑의 수고인데, 교회 일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살면, 교인에 대한 평이 달라지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런 사랑을 했습니다. 소망의 인내의 인내란 원어의 뜻은, 아래에 머문다는 것인데, 인내하려면 겸손하게 남의 아래에 머물며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야지요. 그리고, 인내는 소망을 가져야만 가능합니다. 유대인들 집단 수용소의 벽에‘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이 남아 있었지요. 그 소망으로 인내한 겁니다.‘아, 너무 힘들어, 아파 죽겠어.’하지 말고, 믿는 이는 소망을 갖고 인내합니다.
두 가지 소망이지요. 예를 들어, 몸이 심히 아플 때, 한 소망은, 주님이 곧 낫게 해주실 거야. 그것만 아니고, 죽더라도 난 천국에서 영생을 누려, 소망의 인내입니다. 인내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지요. 어느 숲속에서 두 나무꾼이 백 년 이상 된 큰 나무를 베고 나니, 나무 나이테 모습이 매우 기이합니다. 오래된 나무답게 나이테가 매우 많은데, 그중 다섯 개의 나이테는 다른 것과 다르게 간격이 매우 촘촘했지요. 한 나무꾼이‘이 나무는 오 년간 가뭄이 심해 거의 자라지 못했군.’
다른 이가‘그래, 그러나 그간 나무가 살려고 뿌리를 깊이 내려서 오래 산 거야.’나무에게 인내의 5년이지요.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겹친다고 낙심하거나 방황하지 말고, 더 주님을 찾으며 인내 속에 준비하면, 어려움이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환난이 내게 유익이라.’고백하며, 겪는 환난에도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길 축원합니다. 바른 믿음이요, 성도가 누릴 복이지요. 잘 믿으니 환난이 없다, 아니고, 환난에도 즐거워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여러분도 마찬가지로‘하나님 사랑을 받은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셨음을 믿습니다. 아멘.’이어,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되었다 하지요. 지난 이천 년간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졌지요. 예수 복음이 힘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말로 전해지고, 듣고 흘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길가에 뿌려진 씨는 새가 물어간다, 마귀가 채가는 걸로 이해하지요. 조용한 시간, 자신을 돌아보며‘복음이 내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는가? 그를 위해 내가 더 힘쓸 것이 무엇인가?’살피며 깨달은 것은 실천하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주님을 생각하고 있나? 이어, 바울은‘우리 일행이 처음 데살로니가에 와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바울과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며 보인 모습을 너희가 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옆에 있는 이에게‘내가 바로 믿는 모습을 너희가 보고 안다.’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은 안 하더라도 주위 사람이 그리 알게 행하면 좋지요. 이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많은 환난을 당했음에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은 후, 환난을 당함에도 쫓겨나고, 성령의 기쁨으로 주를 본받았다 하지요. 그런 신앙생활을 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 나라 전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리스 나라의 북쪽 지방이 마게도냐, 남쪽이 아가야이고, 데살로니가 시는 북쪽 마게도냐에 있는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 믿어서 전 그리스의 믿음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음으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선교사가 할 일이 없다는 거지요. 참 부러운 말씀이지요.
지금 우리와 비교하면 신앙 생활할 여건이 훨씬 나빴는데도 어찌 그럴까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사는 형편이 어려울 때 복음이 더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잘 믿기 위해 사는 형편을 어렵게 해야 하나요? 그럴 수 없지요. 말씀을 바로 믿고, 셩령의 도움을 구하며 성도답게 살면 됩니다. 오늘 함께 기억할 것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지요.
이어진 말씀을 보면,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인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다고 말하지 않고, 데살로니가 교인의 입을 통해 말합니다. 세 가지인데, 먼저,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의 반발이 심해서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려주지요.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선교 센터로 삼으려 했는데, 어려움이 심해서 포기하고 근처의 베뢰아로 옮겼지요.
상황을 알려주는 행 17:5을 함께 읽습니다.‘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 하였으나’시작에‘그러나’한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권함을 받고 따랐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방해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곳에 유대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고, 돌로 치고 죽이려 했지요.
두 번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도시 전체가 우상 숭배를 했었으나, 예수 복음은 우상을 버리게 하고 참 하나님을 섬겼지요. 바울의 말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 스스로 한 말입니다. 오늘날 우상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고, 탐욕입니다. 믿는 이에게도 돈이 우상이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하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지요.
셋째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지요. 때가 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심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고, 인내로 소망했습니다.
정리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맞고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으나, 데살로니가로 옮기자 복음을 계속 전했지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을 기준으로 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 했고, 겸손하게 사랑의 수고를 했지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소망하며 인내했습니다. 그런 삶이기에 그들의 믿음이, 복음과 함께 전체 그리스 나라에 퍼졌지요. 예수 복음을 바로 믿고, 성도답게 살면, 복음은 퍼져나갑니다.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데살로니가 믿음의 선배들을 마음에 담으며, 여러분의 믿음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며, 그와 함께, 바울이 안부 인사로 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평강으로 항상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