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히 11:1-10 설교 제목:“믿음이란?”
30여 년 전 일입니다. 제가 신대원에 다닐 때, 하루는 수업 중에 우연히 창문 밖을 보니, 강 사문 목사님이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졌단 뉴스를 보고, 집사람이 강 목사님께 전화 걸어 제가 무사한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멀쩡한 다리가 무너진다,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부실 공사로 기초가 약했기에 무너져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지요. 이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기초도 단단해야 함을 다짐하려는 겁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데, 무엇을 믿는지, 믿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믿음의 기초가 약한 것이지요. 그러면, 믿는 성도답게 살 수 없고, 믿어서 누릴 복을 못 누립니다. 남이 보기에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고, 때로 자신도 내가 예수 믿는지 모를 수 있지요. 오늘은, 믿음의 장이라 불리는 히 11장을 나누며, 믿음의 기초를 단단히 하려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사도신경으로 고백한 것을 믿습니다, 어떻게, 왜 믿느냐? 히브리서 11장이 답이지요.
믿음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와 관련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났음을 믿습니다. 말이 안 되지요. 믿음이 미래와 관련된 것을 알려주는 것이 히 11:1‘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우리가 믿어서 바라는 가장 중요한 것은 훗날 누릴 천국인데, 믿음이 천국이 실제 있음을 알려주지요. 이어‘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천국은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많은 증거를 보며, 우리는 천국 믿음을 더 단단히 합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기뻐 찬양하며 죽음을 맞았나요? 천국을 확신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천국이 있음의 증거입니다. 3절에‘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나니.’믿음의 시작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지요. 믿는 이들은‘하늘, 구름, 비, 꽃’에 대해‘있거나, 말거나.’또는‘전에도 있었어.’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저 하늘이 어쩜 저리도 푸르고 아름다울까, 멋진 모양의 구름이 흘러가네, 비가 내리니 나뭇잎이 춤추는구나, 꽃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네!’하는 이는, 꽤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눈과 마음이 믿음으로 열린 것이지요. 혹, 여러분 중에‘목사님은 마음이 편해서 그렇지. 난 어려운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늘과 꽃이 눈에 들어옵니까?’하는 분은, 지금부터라도 하늘과 꽃을 보고 느껴가세요. 근심 걱정 물러가고, 믿음이 자라갑니다.
6절은, 믿음에 관해 꼭 기억할 말씀입니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당연하지요. 믿음이 없이 교회에 그저 오간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교회 다니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지요. 베드로의 고백을 따라 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와 함께‘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에게 다른 상과 함께 천국 영생의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설명한 후, 그런 믿음을 갖고 산 분들을 소개합니다. 믿음은 믿음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의 선배들의 믿고 행한 삶을 보아야, 온전한 믿음이 어떠함을 알게 되지요. 야고보 사도는‘네 믿음을 내게 보여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했습니다.
오늘 살필 분들은 여러분이 아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어떤 믿음과 행함으로 살았는지 나누며 배웁니다. 먼저, 가인의 동생 아벨입니다.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의 양 제사는 기뻐 받으시고, 가인의 곡물 제사는 받지 않으셔서, 가인이 질투가 나서 동생 아벨을 죽이지요. 아벨은 양을 키웠으니 양을 바치는 제사를, 가인은 곡식을 재배했으니 곡식 제사를 드린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어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이 곡식보다, 양고기를 좋아하시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궁금한 것의 답이 4절에 나오는데,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않다 하지요. 아벨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에게 나오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고, 정성스럽게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태워 하나님께 올렸으나, 가인은 그런 믿음이 없기에, 곡식 몇 단을 올리며 대충 끝냈지요. 제물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바치는 이의 믿음과 정성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정성이 따르지요. 우리도 믿음이 좋으면, 더 정성스런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삼상 15:22에‘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여호와께서 사울 왕에게 적 아말렉을 멸하라 하시며, 모든 짐승까지 죽이라고 하셨는데, 사울 왕이 욕심이 나서 좋은 양과 소를 남겼지요. 사무엘선지가 사울 왕에게‘왜, 짐승을 살려두었느냐?’‘여호와께 좋은 것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그때, 사무엘이‘순종이 제사보다 낫다.’한 것이지요.
우리에게‘교회 다니며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한다.’좋으나, 세상에 살 때 하나님 뜻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믿음을 행한다고 하면, 어려운 이를 돕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삶, 세상의 안 믿는 이와 구별된 삶이어야 합니다. 마음에 품은 소망이 다르고, 하는 말이 경건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달라야 하지요. 어찌 그리 살아요? 바른 믿음으로 합니다.
오래전 아벨은 형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좋은 믿음으로 드린 참 제사는,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늘도 전해지며 따르라 합니다. 다음은 에녹이지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나요? 창 5장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에 동행했지요.
에녹은 우리에게, 주님과‘동행’하라 하는데, 여러분은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은, 동행하는 주님과 대화이지요.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함을 즐거워하나요? 이어, 노아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 즉 큰 홍수를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지요. 노아가 산 중턱에 큰 방주를 지을 때, 이웃 사람들은 노아가 정신이 나갔다고 비난했지요.
방주를 만드는데, 백여 년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노아는 믿음이 있어,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방주를 완성함으로, 사람들이 다 홍수에 죽을 때, 노아와 가족만 살아남았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간 자만 살았듯,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살라고 하지요. 다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지요.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아서 부요하게 살았지요.
당시는 일족이 모여 서로 보호하며 살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곳을 떠나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생활의 부요함과 안전한 터전을 떠나서, 위험하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간 것이, 믿음의 순종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으리라 한 것이지요.
히 11:12에‘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하나님께 이 약속을 받은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어서, 말씀에 있는‘죽은 자와 같은 때’그들이 믿었지요. 히브리서 말씀에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다 하지요. 아브라함 때부터 천오백여 년이 지난 때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아브라함의 혈통의 후손인 유대인, 아랍인, 또, 믿음의 후손인 기독교인, 회교도를 합치면 50억이 넘으니, 아브라함 이후 그 후손을 다 합하면, 바다의 모래, 하늘의 별의 수에 못지않지요. 하나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증거입니다. 그와 함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이삭의 후손이라야 네 자손이라 하셨는데도, 이삭을 칼로 죽여 번제를 드리려 한 것은, 하나님이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은, 이삭을 죽이기 직전에 하나님이 살리셨으나, 혹 이삭이 죽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살아남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브라함이, 눈앞에 보이지 않고, 고향을 떠나면 많은 위험이 있음에도 믿고 떠났고, 또, 자식 하나 없을 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으리라는 것을 믿고, 하나 더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더 좋은 곳을 예비하신 것을 믿은 것들을 배워서 따라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우리 삶에 적용해야지요.
이어서, 모세는 여호와를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궁정의 호화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갔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합니다. 잠시, 우리를 돌아봅니다. 누구나 부요하고 많이 누리며 사는 것 좋아하지요. 그러나, 모세를 생각하면, 세상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님과 성도들과 함께하는 삶을 택하고 그 안에서 보람을 누려야 합니다.
히 11:26에‘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 저자는 긴 세월을 뛰어 너머, 모세를 그리스도 예수님께 연결하지요. 모세가 애굽 왕자로서의 영화를 포기한 것은, 훗날 메시야 예수가 오셔서 이루실 구원을 믿고, 믿음으로 그리 한 것이라 합니다. 신앙의 중요한 한 면을 알려주지요. 신앙은 수천 년의 간격을 초월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삼사천 년이, 우리 눈앞에 한꺼번에 펼쳐지지요.
오늘 말씀의,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가 성경 속에만 있는 분이 아니라, 그분들의 믿음이 우리 삶에 녹아서, 우리 행함으로 드러나야지요. 히브리서 저자는, 그 외에 믿음의 사람으로,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등과 다윗과 사무엘 등을 다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그들이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있어서 좋은 경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심한 고문과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고난들을 겪었다 하지요. 전해지는 이야기로, 이사야 선지가 톱으로 켜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최초의 집사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사도 바울은 도끼로 목이 잘렸지요.
복음을 위해서요,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예수를 믿음을 알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우리의 믿음을 돌아봐야지요. 너무 편하게 신앙 생활하며‘내가 믿어줄까, 말까?’저울질하지 않나요? 히 11장 끝에 가면, 믿음이 좋은 그 선배들은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주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하실 것을 바라만 보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난, 안 보여서, 이해되지 않아서 못 믿어.’거기에 머물 것입니까? 아니지요, 우리도,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천국 영생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아름다운 성도로 살므로, 좋은 본을 주위에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 살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