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삼상 6:7-16 설교 제목:“하나님이 함께하심”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해 살피면서, 말씀 제목을‘하나님이 함께하심’이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정성껏 모셨기 때문이지요. 언약궤는 여호와가 임재하신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 생활할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 하시며, 언약궤를 만들어 지성소에 두라 하셨지요, 그곳에 내가 함께하신다 했습니다. 언약궤 안에, 십계명이 써진 두 돌판, 만나를 넣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었지요.
히브리서 9:4을 함께 읽습니다.‘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이를 넣은 것은, 언약궤에 여호와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돌판은 지켜야 할 여호와 율법, 만나는, 거친 광야에서 만나로 백성을 먹여 살린 의미와 여호와 말씀이란 뜻이 있고, 지팡이는 여호와의 능력과 택하심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왜, 모세와 아론의 명만 따라야 하는가?’불평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각 지파 지도자 지팡이에 자기 이름을 적어, 성소의 언약궤 앞에 두라고 하셨지요. 하룻밤 사이에,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호와의 그런 능력과 택하심을 알고, 여호와가 하시는 일에 모두 순종하라는 거지요. 구약 민수기 17장의 말씀이지요. 언약궤는,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며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자 강물이 멈춰 섰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여리고 성을 돌자,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 언약궤이기에, 엘리 대제사장 때, 블레셋이 침공해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자, 여호와의 언약궤가 함께하면 전쟁에 승리하리라 생각하고, 엘리의 두 아들이 언약궤를 모시고 전쟁터에 나갔지요. 언약궤가 진영에 오자 이스라엘군은 승리한다고 환호했고, 언약궤가 그간 한 일을 들어 아는 블레셋 군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블레셋 군이 대승하고 언약궤를 빼앗아 갔지요. 그 소식을 들은, 엘리 대제사장은 앉았던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언약궤에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않거나, 여호와의 능력이 부족해서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니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모셨으면, 모신 백성답게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리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그리 만든 것은,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로, 제사장인데도 온갖 못된 짓을 하니, 백성들이 그를 따라서 여호와를 떠나 죄악을 범했지요. 한 예로, 고기를 삶아서 여호와 제단에 드리는데, 엘리 아들들이 보낸 종이 와서, 삶는 그릇에서 좋은 고기를 먼저 빼앗아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전혀 안 중에 없었지요. 엘리 대제사장이 아들들을 타이르는 삼상 2:24,25을 함께 읽습니다.‘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라.’
엘리 대제사장이 두 가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는‘너희가 여호와 백성으로 범죄케 한다.’너희가 나쁜 짓을 하면 백성들이 따라 한다는 거지요. 우리 믿는 이도, 주위에 좋은 본을 보이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지요. 또 하나,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사람이 중간에서 기도하며 여호와께 용서를 빌 수 있으나,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벌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요. 엘리의 두 아들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언약궤를 빼앗기고 죽었습니다.
오늘날도, 평소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와주세요.’아니라 하지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아니, 우리를 사랑하기에, 여호와를 외면하며 잘못을 범한 이를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잘못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지요.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경외하며 섬기는 이라야, 아프거나 힘들 때, 도우심과 보호를 받습니다.
이어진 성경 말씀은, 여호와께서 언약궤에 함께 계시며, 큰 능력이 있음을 알려주지요. 블레셋인들이, 여호와 언약궤를 그들이 섬기는 다곤 신당에 가져다 둔 것은,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다곤 신상이 마치 절하듯 언약궤 앞에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습니다.‘거 이상하다. 바람도 없는데, 왜 넘어졌지?’바로 세웠지요.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이번엔 다곤 신상이 넘어지며 머리와 손발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여호와 앞에 박살이 났지요.
그뿐 아니라, 그 도시에 악한 괴질이 퍼집니다. 고통을 당하던 주민들이 두려워서, 언약궤를 다른 블레셋 도시에 보내니, 거기서도 악한 병이 돌지요. 블레셋이 승리해서 빼앗아 온 여호와 언약궤가, 큰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모여서 의논한 결과, 이스라엘 진영에 돌려보내기로 하면서, 한 가지 시험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이지요.
젖을 뗀 암소 두 마리가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끌게 하면서, 집에 남겨둔 송아지들이 어미 소를 그리며 우는 소리에, 어미 소가 돌아오거나 뒤돌아보면, 블레셋에 생긴 괴질과 언약궤가 무관한 걸로 여기자는 시험이지요. 수레를 끄는 어미 소가 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이스라엘 마을로 가는 걸 본, 블레셋 사람들은‘언약궤에 과연 이스라엘 신이 함께하는구나.’하며 돌아갔습니다.
밭에서 일하다가 언약궤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기뻐하며, 소를 잡아 번제로 드리고 언약궤를 고이 모셨지요. 다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려면, 평소에 여호와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마음에 담습니다. 그리 살면, 우리와 함께하신 여호와께서, 우리가 당하는 악한 유혹은 물리치게 하시고, 아프거나 힘들 때 이겨내게 하시지요. 그것이 성도들이 누릴 복입니다.‘복, 복’하며 복을 뒤좇을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면, 주님의 복이 따릅니다.
이제,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언약궤에 대한 관심과 그 결과를 살피지요. 사사시대가 끝나고, 사울이 왕이 되었는데, 왕위에 있을 때, 언약궤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그에 반해,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하지요. 다윗은 언약궤에 여호와가 함께하심을 믿었고, 여호와께서 자신을 시골 목동에서 택해서, 많은 죽을 고비에서 살려 주신 후,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심을 믿으니, 언약궤를 안 챙길 수 없습니다.
언약궤에 무심했던 사울은, 왕이 된 후 점점 교만해져서, 결국 세 아들과 함께 블레셋 군에 죽고 말지만, 언약궤를 정성껏 모신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지금도 존중받을 뿐 아니라, 그 후손에서 메시야 예수님이 오셨지요. 이를 알면,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나요? 그 언약궤가 어디 있나? 찾아다녀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언약궤의 역할은, 성령님이 하심을 믿고, 다윗이 언약궤를 소중히 여겼듯, 성령님을 잘 섬기며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왕이 언약궤를 모신 것을 더 살피며 교훈을 얻지요. 다윗 왕은 새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싣고 옮기는데, 수레를 끌고 가던 소가 무엇에 놀라 뛰자, 언약궤가 수레에서 떨어질까 봐, 웃사가 궤를 잡았는데, 여호와께서 치시니 그 자리에서 죽어서, 그곳 이름을‘베레스 웃사’웃사를 침이라 합니다. 성경 읽을 때, 이해하기 힘든, 억울하게 죽은 것 같은 웃사인데, 왜 그리 죽였을까요? 하나님 명령은, 언약궤는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데, 수레로 옮겼기 때문이지요.
다윗 왕이 그것을 몰랐을 수 있으나, 알고도 귀한 언약궤니 내가 좋은 수레에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요사이 같으면, 귀한 것이니 고급 세단에 모셔야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든 내 생각에 좋은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라 하지요. 그러려면,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하나님 뜻을 알고 따릅니다. 다윗 왕이 놀라서 궤를 원래 자리에 두었는데, 궤를 둔 집이 복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궤를 옮겨 오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옮기는데, 몇 걸음마다 짐승 제물을 바치고, 여러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지요. 다윗은, 언약궤를 모시는 것이 너무 기뻐서, 벌거벗은 몸으로 궤를 뒤따르며 춤을 덩실덩실 춥니다. 왕비 미갈이 창으로 내다 보며‘천하니 어쩔 수 없어.’미갈은, 자신은 사울 왕의 딸인 공주요, 다윗은 시골 목동임이 마음에 여전히 있으니 천히 여긴 거지요.
다윗이 궤를 옮기고 집에 돌아오니, 미갈이‘왕이 어찌 그런 모습을 천한 것들 앞에 보이냐?’ 비난하자‘나를 시골 목동에서 택해 왕으로 삼아주신 여호와 은혜에, 나는 벌거벗고 춤추는 것보다 더한 일도 하리라.’왕비 미갈은, 아버지 사울 왕처럼 여호와께 받은 은혜를 모릅니다. 자신이 공주에서 왕비가 된 것만 생각하지요. 아버지 사울 왕이 전사해서 자기 집안이 망한 것과, 다른 이에게 시집간 것을 다윗이 불러줘서 왕비가 된 것은 생각지 않으니, 춤추는 다윗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지요. 자신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 복이 많아 잘 산다고 생각하면 미갈과 같지요. 아니고, 허물투성이고 연약함에도, 오직 주님 은혜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 여호와께 감사하며 삽니다. 언약궤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나누었는데, 우리에게 언약궤는 성령님이지요. 구약시대에도 성령님이 계셨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느 사람에게 잠깐 머물다가 떠났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후, 보낸 성령은 믿는 우리 안에 오셔서, 죽을 때까지 항상 함께하십니다.
언약궤를 살피며, 여호와의 능력은, 여호와를 믿고 경외하며, 말씀 따라 사는 자에게 나타남을 나누었는데, 성령님도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영이며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살며, 그 뜻에 따르기에 힘써야 성령의 도움을 받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편 15:1-4 을 함께 읽습니다.‘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을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주의 장막에 머물 자란, 여호와가 함께하심을 믿고 사는 자이지요. 어떻게 살아요? 정직하게 삽니다. 공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따르는 거지요.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대개 남의 허물을 말하고 듣는 것을 즐기지요. 믿는 이는 삼가야 합니다. 이웃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요사이 갈수록 서로 비방이 심해지고, 스마트폰에 악플을 즐겨 다는데, 믿는 이는 그래선 안 되지요.
오히려 성도들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높입니다. 그것도 이웃사랑입니다. 믿는 우리가 먼저 하면 다른 이가 따라 하지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이는 존대합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약속한 것으로, 내게 손해가 될지라도 반드시 지킵니다. 이런 성도가 성령의 함께하심을 믿고 사는 이이고, 그리 살면,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아 풍성한 은혜를 누립니다.
신앙생활은 교회 오가는 것이나,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를 바탕으로 성도답게 사는 것이지요. 주위에서‘예수 믿는 이는 저래야 해.’들으면 좋지요? 그리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 살면, 성령님이 기뻐하시지요. 여러분 모두 그리 살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