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삼상 17:44-49 설교:“신앙생활을 잘 한 분들”
예배 시작 때 읽어드린 말씀을 잘 아실 것입니다.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자녀처럼 살아야지요.‘네 믿음을 보여봐라. 나는 내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우리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와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부가 되어야 함을 몇 주 나누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교회 나오기 힘들어서, 이런 말씀이 필요하다 봅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신앙생활을 잘 한 분들을 살펴보며, 배워서 따랐으면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의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는, 어릴 때는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 한 방으로 통쾌히 물리친 것에 그저‘와! 대단하다.’했다면, 자라가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우리가 상대할 골리앗은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알아가야 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자주 공격해 약탈하고 백성을 죽였지요. 오늘 말씀에도, 블레셋이 공격해서 이스라엘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 진 앞에 나와‘군사들이 다 싸울 것 없이, 나와 맞싸울 자를 내보내라. 둘이 싸워서 진 쪽이 종이 되게 하자.’여러 날 그리 외치는데, 이스라엘 진영에는 아무도 나서질 못합니다. 나가면 죽을 게 뻔하지요. 그때, 전쟁터에 나온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는 아버지 명에 따라, 소년 다윗이 진에 왔다가 들었습니다.‘어찌 이럴 수가?’다윗이 주위에‘내가 나가 상대하겠다.’하자, 사울 왕이 듣고, 다윗을 불러‘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너를 내보내 죽게 할 수는 없다. 안 된다.’
다윗이‘제가 들에서 양을 칠 때 사자가 양을 물어가면, 그 입에서 양을 꺼냈고, 나를 해하고자 하면 그 수염을 잡고 쳐 죽였습니다. 제가 사자와 곰을 쳤은 즉,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블렛셋 사람을 짐승의 하나 같이 치리이다.’사울 왕이‘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길 원하노라.’하며, 자기 갑옷을 입히고 놋 투구를 쓰게 하지요. 다윗은 무거운 갑옷을 입으니 거동이 불편하자, 원래 목동의 옷에, 매끈한 돌맹이 몇 개를 챙겨,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간 것이, 오늘 말씀의 앞부분이지요.
성경 말씀을 읽으며 그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이 더 은혜롭습니다. 그런 모습의 다윗을 보며, 골리앗이‘내게로 오라 네 살을, 새와 들짐승의 먹이로 주리라.’다윗은‘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나간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외친 후, 빨리 달려가며 물매로 돌을 날리니, 돌이 날아가 투구 쓴 이마에 딱 박혀, 골리앗이 죽습니다.
골리앗이 쿵 쓰러지며‘이게 뭔 일이야.’했을 겁니다. 다윗은, 손에 칼이 없어, 골리앗의 칼로 그 머리를 베지요. 이를 본, 블렛셋 군이 정신없이 도망치자, 이스라엘군은 뒤따르며 이삭 줍듯 그들을 죽이니 크게 승리했지요.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 이마에 맞춘 것을, 하나님의 도움이구나, 생각할 수 있지요. 그것도 맞지만, 소년 다윗이 들에서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을 물리치려고 무수히 물맷돌 던지기를 연습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사람이 화답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생활이 어렵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기도하고 성경 읽으며 신앙생활을 잘하면, 훨씬 더 좋은 날이 옵니다. 우리에게 골리앗은, 상대하기 힘든 어려움일 수도, 마귀 사탄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한 이는, 어려움에 낙심하거나, 누구 때문이야, 불평, 원망하지만, 신앙생활을 잘한 이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며, 겪는 어려움을 능히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다윗의 승리에는, 살면서 여호와가 함께하신 체험이 큰 역할을 했지요.
소년 다윗이 사울 왕과 대화할 때‘여호와께서 저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다윗이 생활하면서 쌓인, 하나님 은혜 체험이지요. 책에서 읽은 정도로 이럴 수 없지요. 다윗은 여러 차례 그런 체험을 했기에‘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가노라.’담대히 외치며 골리앗에게 달려간 겁니다. 우리도 살면서 겪는 아픔이나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내면, 그런 체험이, 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이 됩니다.‘전에 심한 어려움을, 하나님이 도우셔서 이겨냈어, 이 정도야 뭘.’
3천 년 전 다윗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숭덕교회와 학사에 있으니, 설립자 박 영출 목사님을 생각해 봅니다. 깊은 산골의 어려운 집안에서 자랐으나, 내가 여기 머물 수 없다며, 대구로, 일본 동경으로 떨치며 나가신 것이, 숭덕학사를 통해 많은 이에 도움을 주었지요. 시작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믿은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갔고, 그것이 쌓이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어려운 여건을 계속 이겨내셨지요.
숭덕교회와 학사가 주님 은혜로 오늘에 이른 것을 보고 들으면서, 여러분도 능히 승리할 수 있음을 다짐하기 바랍니다. 숭덕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함께하신 증거입니다. 두 번째 분을 살피기 위해, 왕하 5:2,3을 함께 읽습니다.‘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북쪽 아람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를 만나, 나병을 고친 이야기지요. 그 길을 튼 것이, 아람 군대에 잡혀와 종살이하던 어린 여종입니다. 부모 형제들은 죽고, 집은 불탔을 겁니다. 이 여종에게서 원수도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봅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주인이 나병에 걸린 걸 알면‘꼴 좋다, 우리를 약탈하더니 천벌을 받았구나.’했겠으나, 여종은 달랐지요, 나병 걸린 주인을 불쌍히 여기고, 안 주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찾아가면 나을 것이라 합니다.
어린 소녀가, 여호와 믿음과 엘리사 선지의 능력을 믿었고, 원수도 사랑했기에 그럴 수 있었지요. 끌려가 종살이하면 대체로‘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맞아? 우리가 잘 믿었는데 내 꼴이 이게 뭐야?’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적용하면‘내가 주님을 믿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해, 내가 이렇게 힘든데, 뭐 이웃 사랑하라고? 말도 안 돼. 남들은 내게 무심한데 내가 왜 해, 바보같이.’
이어진 사연을 살펴봅니다. 부인의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아람 왕에게 알리자,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신하를 보내니 나병을 잘 고쳐달라.’는 편지를 보내지요. 이스라엘 왕은‘이는 필시 병을 안 고쳤다며, 침략하려는 수작이야. 어찌 나병을 고친단 말인가?’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왕이, 끌려가 종살이하는 어린 소녀보다 믿음이 못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랬단 소식을 듣고, 엘리사 선지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달라 하지요.
나아만이 오자, 엘리사 선지는 내다보지도 않고‘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나아만 장군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내가 나병에 걸렸어도,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인데 어찌 내다보지도 않고 그런 말만 해. 강물에 씻어서 나을 거면, 우리나라엔 더 좋은 강물이 많은데.’성내며 돌아가려 하자, 한 부하가‘선지자가 더 어려운 일을 시켰어도 해야 할 텐데, 강에 가서 씻으라 하니 하세요.’나아만이 요단강에 들어가 씻으니, 살결이 어린아이같이 되었지요.
엘리사 선지는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을 뿐 아니라, 믿음에 귀중한 두 가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는, 겸손입니다. 나아만이 교만해서 그냥 돌아갔으면, 나병을 못 고쳤지요. 우리에게 겸손하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은혜는 값없이 거저 주는 것임을 알려주려고, 나아만이 내놓은 보화를 거절했지요. 여기에, 보조교사가 등장합니다. 엘리사 선지의 사환 게하시이지요. 나아만이 주려는데, 엘리사 선지가 받지 않으니 아깝습니다.
게하시가 나아만을 뒤따라가서‘선지가 은과 옷 두 벌을 달라 합디다.’나아만이 기쁘게 주는 것을 받아서 자기 집에 몰래 갖다 놓고 오니, 엘리사 선지가‘너 어디 갔다 오냐?’‘아무 데도 안 갔는데요.’‘지금 재물을 챙길 때냐?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후손에게 미칠지라.’게하시는, 탐욕을 내다가, 나병에 걸리고 후손에 물려주는 엄청난 경을 칩니다. 우리에게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가르치니, 그 나름 보조교사이지요.
세 번째로, 신약에 와서 스데반 집사를 봅니다. 행 6장에 보면,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의 하나로, 일곱 집사에 뽑힌 분이지요. 이어진 행 7장은, 공회에 잡혀간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행 7장을 천천히 읽어보시며, 나는 이 내용을 어느 만큼 아는지 살펴보세요. 신앙생활의 하나가 성경을 읽는 것인데, 그저 읽고 끝나는 것이, 성경 말씀이 내 믿음이 되어야 하고, 그 내용을 스데반 집사처럼 정연하게, 주위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난 바빠서 성경을 읽지 못해. 읽어도 마음에 남는 게 없어. 읽고 아는 것 같은데, 남에게 전하지 못해.’여러분은 어느 것에 해당하나요? 읽고 다른 이에게 전할 정도이니, 스데반 집사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전한 후에, 메시야 오심을 알리며, 공회에 모인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외칩니다.‘너희가 성령을 거스르고 의인 예수를 잡아주고 살인한 자가 되었다.’얼마나 담대합니까?
우리가 재판정에서 외칠 기회는 없지만, 세상에 살면서‘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 영생을 누림을 믿습니다.’하며,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성도답게 살려고 힘쓰는 것이, 우리의 바람직한 신앙생활이지요. 그뿐 아니라, 스데반 집사는 끌려나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죽는 순간에, 예수님이 하신 대로, 돌로친 이들을 용서하지요. 교회 다니는 이들이, 대체로 사리가 분명하고, 손해 보려 하지 않습니다. 옳다고 따지다 보면 다툼으로 이어지지요.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하나는, 남들이 바보같이 여겨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화를 돋우어도 참고 식힙니다.
네 번째로,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인 이를 살피려, 눅 7:5-7을 읽습니다.‘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할 줄 못할 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이방인인 로마 백부장을 통해, 신앙생활의 귀한 면을 봅니다.
먼저, 이웃사랑입니다. 앞의 종살이 하던 소녀는 원수도 사랑한 거라면, 식민지에서 다른 동료들이 박해하고 수탈할 때, 이 백부장은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남들 안 할 때 하는 것, 귀한 신앙생활이지요. 그가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회당도 지어주니, 백성들이 그를 칭송했지요. 이방인 백부장은 우리에게, 나를 힘들게 하는 이도 사랑하고, 무시해도 좋을 이에게도 사랑을 베풀라 합니다.
백부장은 그 당시 종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종이 병들자, 정성으로 고치려 합니다. 참 이웃 사랑아닙니까? 또 하나는, 겸손이지요. 예수님께‘우리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니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겁니다.’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셨지요. 겸손과 좋은 믿음은 함께 합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이런 믿음이 없지요.
오늘 신앙생활을 잘한 믿음의 네 분을 살폈지요. 다윗은, 어릴 때 들에서 양을 치는 일에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며 매사에 준비했기에, 천하무적 골리앗에게 나아가며‘너는 칼과 창을 들고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가노라.’우리에게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언제나‘나는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삽니다.’좋지요.
아람에 끌려가 종살이하는 어린 여종은, 주인이 나병에 걸린 것을 알고,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계셨다면 나았을 건데.. 이처럼 원수를 사랑함으로, 나아만이 나병이 낫고, 여호와를 믿게 되고, 더이상 이스라엘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나병이 자주 나오는 것은, 불치의 병으로, 죄로 인해 영 죽음에 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나병이 나았다, 믿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는 것이지요. 믿고 구원받은 여러분은, 어린 종살이 소녀처럼, 이웃에 이 귀한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를 말씀드리며, 행 7장을 천천히 읽으며,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살펴보라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음으로 복음을 증거한 것은, 성경을 많이 읽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훤히 알았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읽지 않으면, 그런 신앙생활이 힘듭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이웃 사랑과 겸손으로 살았기에, 다른 백부장들이 욕을 먹을 때, 칭찬을 받았지요. 여러분도‘저 사람, 요사이 보기 드물게 신앙생활을 참 하네.’그런 좋은 평을 들어야지요.
그것이 한두 번 신경 쓴다고 되지 않습니다. 하는 체, 금방 들통나지요. 평소에 꾸준히 해서, 삶에서 묻어나야지요. 다윗과 스데반 집사만 살피면‘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야. 나는 그리 못해.’하겠으나, 종으로 끌려간 어린 소녀, 이방인 로마 백부장을 생각하면 달라지지요. 살펴본 대로, 신앙생활은 믿고 교회 다니는 것만 아니고, 삶에서 항상 묻어 나와야 합니다. 그를 위해, 저 십자가와 우리가 누릴 천국 영생을 항상 눈앞에 그려야지요. 다들 아름다운 신앙 생활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