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출 20:12 설교:“단순화와 행함”
5월 가정의 달을 지나며 보니까, 3,40대 부모들이 참 힘든 것 같네요. 어린이날엔 자녀들이 선물 사 달라, 놀러가자 보채고, 며칠 뒤 어버이날엔 부모님 찾아뵙고 봉투를 드려야 하고.. 학사형제들은 부모님 찾아뵙고, 대화하고 팔다리를 주물러드리세요. 그런데, 둘 다 챙기려니 힘들다 하기보다는 가정의 달을 지내며, 자식의 귀중함과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되새기면 좋겠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두 조직이 가정과 교회라 합니다.
가정을 통해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키워가고, 교회를 통해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감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지요.‘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이 흥렬씨가 작곡한‘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서, 음악에 뜻을 두고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음악공부 하려면 피아노가 없어선 안 되는 줄 알게 되었지요. 어머니에게 편지로‘피아노 없이는 음악공부를 할 수 없어 집에 돌아갑니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산을 훑다시피 하며, 솔방울을 주어모아 팔아, 당시로 거금인 400원을 보냈고, 아들은 피아노를 사 공부하며, 처음 지은 곡이 이것입니다. 좀 더 부르면‘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어머니의 그런 아들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어버이날 이 곡을 부르며 들으며, 마음의 감동을 받지요. 제 어릴 때 기억으로, 아침에 학교 가려다 배가 살살 아프면‘엄마, 배 아파요.’
어머니는 배 아프면 학교 가지 말고 쉬라하시며, 배에 손을 대시고‘내 손이 약손이다 술술 내려가거라.’그러면 배가 나았는데, 그 손길이 그립습니다. 모두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적인 인물이 된 윈스턴 처칠에 대해, 한 신문이 그의 유치원, 소학교 등 모든 것을 훑으며, 처칠이 있게 한 스승들 수십 명을 찾아내‘위대한 스승들’이란 특집을 냈습니다. 처칠은 그것을 본 후, 신문사에 전화해서‘제일 귀한 분이 빠졌습니다. 오늘 내가 있게 하신 내 어머니입니다.’어머니가 훌륭해서 처칠이 되었을까요, 어머니은혜를 감사해서 그리 되었을까요? 둘 다겠지요.
옛날로 거슬러, 4세기 초 흔들리던 기독교를 든든히 세운 어거스틴은, 젊은 날 어머니 속을 무척 썩였지요. 어머니 모니카가 하도 답답해, 목사님을 찾아가‘아들을 어쩌면 좋습니까?’목사님은‘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아들은 결코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어거스틴은 회심을 하고 예수를 믿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으니, 그것이 그의 마음에 응어리로 남았을 겁니다. 훗날 그가 고백한 것이‘제 오늘이 있게 한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였습니다.’어머니 되신 분들, 아버님도 마찬가지로 자녀를 위해 더 기도하세요.
훌륭한 분만 아니라, 우리 모두 부모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 오늘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요일 4:12을 함께 읽습니다.‘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부모님은 다들 보았고, 많은 사랑을 직접 받았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이는, 서로 사랑할 수 있지요.
서로 사랑하는 이라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더욱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부모님 사랑에 감사하는 이가 있고, 더러는 부모니까 당연하지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부모님 사랑에 감사하는 이와‘당연한 걸 뭘 그래.’하는 이의 삶은 달라집니다. 부모님 사랑을 느끼는 이는, 하나님 사랑을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신 그 이상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니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이 명하신 이웃을 사랑하지요. 그것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요사이 현대인은 세상이 바삐 돌아가고, 우리도 바쁩니다. 살기도 바쁜데, 교회 다니고, 봉사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할 것이 많지요. 가정 일, 학교, 직장, 교회 합하니 너무 힘들지요. 이럴 때 생각하자고 오늘 설교 말씀을‘단순화와 행함’이라 했지요. 신앙생활을 단순화하는 길의 하나로‘부모 공경’을 생각하고, 그를 나누려고 출 20:12을 택했지요.
그것은, 십계명 중 제 오계명인데, 오 계명을 지킴으로 십계명을 다 지킴임을 나누려합니다. 단순화지요. 단순화하면 지키기도 쉽습니다. 왜 그런지 말씀드립니다. 십계명 앞의 네 가지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고, 뒤 여섯 가지는 사람 간의 관계이지요. 오 계명은 중간에 있어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앞 네 계명은‘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여호와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을 예수님은 줄여서‘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라.’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지 않지요.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은 나 외에 모든 사람입니다. 이웃 중에, 우리를 낳고 기르시며 온갖 사랑을 베푸신 부모님을 사랑해야 마땅하지요.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십계명 앞의 넷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사랑을 받은 부모님조차 사랑하지 않는 이는, 이웃도 사랑치 않고, 그런 이는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교회 잘 다니며,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어, 오 계명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뒤의 다섯 계명도 잘 지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이가, 살인하거나 도적질하거나 간음하나요? 이웃에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지 않지요. 그럴 수 없습니다. 십계명 후반부를 예수님께서‘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단순화 하셨지요. 사랑하면 이웃에 해되는 일은, 안 합니다.
여기서, 효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효도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자주 찾아뵙는 것이라 합니다. 그것만 아니지요.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참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효도입니다. 이처럼, 십계명이 열 가지라 난 기억 못해, 그러니 못 지켜, 아니고요, 오계명 너희 부모를 공경하면, 열 가지를 다 지킵니다. 단순화요, 부모공경의 실천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가정의 참 아들로 효도하자는, 숭덕의‘가정의 참아들’을 살펴봅니다.
먼저 열심히 공부해서 누구 아들이 잘 되었다더라 하는 것이 효도이지요. 가끔 길거리에‘축하! 금호 3가동 누구 아들 고시 합격’현수막이 붙지요. 자식으로 인해 아버지이름이 드러나면, 부모의 기쁨이요, 자식으로 효도지요. 공부만 아닙니다. 생활을 바르게 이웃을 사랑하며 살면, 어느 분은 자녀를 참 잘 키웠다 하지요, 효도이지요. 반대는, 그리 훌륭하신 분이 자녀를 왜 저렇게 키우셨지? 그래선 안 되지요.
또 하나, 건강관리를 잘 해서, 몸이 건강한 것이 효도입니다. 그래서, 숭덕에서 몸을 상하게 하는 술과 담배를 금하자고 합니다. 오후에 추모예배를 드리는 고 박 목사님이 자주 하신 말씀은, 부모님들이 뼈 빠지게 고생한 곡식과 소 팔아 보낸 학자금으로 담배를 피우면 부모님 살을 태우는 것이요, 술을 마시면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형제들 중에, 제가 벌어 쓰는데요, 하는 분, 그렇더라도 몸이 상하면 불효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많은 가르침과 이적, 병 고침을 베푸셨으나, 오늘 부모공경에 맞춰, 우리 주 예수님이 실천하신 효도를 살핍니다. 먼저,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에 순종해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앞으로 겪을 고난을 아셨고, 동시에 인간의 몸이라 그것이 몹시 두려웠지요.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을 피같이 흘리며 기도하시며‘아버지여 이 잔이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고난이었으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지요.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모님 뜻에 순종하려면, 먼저, 내 뜻과 부모님 뜻이 다를 때, 되도록 설득해야지요. 부모님과 뜻이 다를 수 있으나, 부모님의 자식사랑 마음은 우리 마음에 담아야합니다.‘부모님은 말이 안 통해.’아니고요, 부모님도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허심탄회하게 부모와 자식이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지요. 순종입니다.
또 하나는, 어느 부모나 자녀들이 바른 길을 가기 원하지요. 그런데 세상이 그리 두지 않습니다. 온갖 유혹이나 허풍들이 판을 쳐서, 살다보면, 아! 길을 잘못 들었네, 앞이 캄캄하네,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를 생각하며 그 길을 따르는 것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부모님의 기쁨이요 효도이지요. 갈 길이 헷갈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따르는 것 좋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에 이어, 효도는,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십자가에 달린 고통과 죽음 앞에서, 어머니를 염려하며, 제자 요한에게‘네 어머니라.’어머니에게‘아들입니다.’부탁하지요. 이것은 너무 많이 들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살면서, 내가 너무 힘들어 부모님을 돌볼 힘이 없다 할 때, 이 장면을 기억하면 이겨낼 수 있는 새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보다 더한 것은 없겠지요.
이어 살필 것은, 예수님께서 잘못된 효도를 질책하신 것입니다. 함께 막 7:11,12을 읽습니다.‘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것도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고르반이란 말의 뜻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의미로‘나는 이렇게 귀한 것도 하나님께 드렸어.’했으나, 점차 부모를 잘 모시고 싶지 않은 자녀들이 악용했지요.
응당 부모에게 드릴 것을‘고르반’하면서 자기가 씁니다. 하나님께 드린다 한 것을 성전에 가져가지 않고, 자기 집에 두어도 되기에, 그리 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흔들의자가 노부모가 쓰면 좋으나, 자기가 쓰고 싶을 때‘고르반’하고는 집에 두고 자기가 씁니다. 예수님은 그런 전통이, 오계명인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를 어긴다고 질책한 것이지요.
오늘날로 보면 어떤 경우일까요? 내가 한 주간 직장 다니고, 주일에 교회 나가 헌신하고 도저히 늙은 부모 찾아뵈올 겨를이 없네. 내가 빠듯한 월급 받아 생활하고, 교회 헌금하고 나니, 부모님 생활비 드릴 수 없네. 현대판 고르반이라 봅니다. 하나님께 시간과 돈을 다 바쳤다는 것이죠. 우리는 힘들더라도, 하나님, 부모님 다 정성껏 섬겨야지요. 그래서, 더 부지런해야 하고, 살면서 지출은 더 절제해야 합니다. 웬만해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이어, 살필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 약속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약속하셨고, 다른 표현으로 부모를 공경하면, 복이 천대에 이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부모에게 잘 하면, 부모님이 좋고, 내가 주님의 복을 받고, 자녀가 보고 배워서, 내게 잘 하고, 자녀는 주님의 복을 받고, 대대로 이어가지요. 요사이, 젊은 부모가 자기 자녀만 챙기느라 노부모는 등한히 하는데, 그렇게 자란 자녀가 나중에 자기에게 어떻게 할까요? 본 대로 합니다.
늙은 아버지가 손이 떨려서 사기 밥그릇을 자주 깨트리자, 아들이 개밥그릇으로 쓰던 나무그릇을, 아버지 밥그릇으로 썼지요. 그가 외출했다 돌아오니, 열 살 난 아들이 나무토막을 열심히 깎고 있습니다.‘뭘 만드냐?’‘아버지 밥그릇 만들고 있어요.’자녀들은 본 대로 배웁니다. 좋은 본을 보이면 따라 하지요.
오늘 단순화와 실천으로 말씀을 나누었지요. 여러분이 어떤 계기가 있어, 신앙생활을 좀 더 바르게 잘 해보자는 마음을 들 때 무엇부터 하겠습니까? 성경을 읽을까요? 기도할까요? 나가서 선행할 곳을 찾아 다니까요? 별로 안 하다가 하려면 힘듭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부모님을 공경하세요. 살아계신 부모님을 좀 더 정성껏 잘 모시고, 돌아가신 분은 그 뜻을 기리고 남겨주신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돌봅니다.
요일 4:20에 읽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자기를 낳고 헌신적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부모공경이 전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길임은 분명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부모는 주의 훈계와 교훈으로 양육하라 하지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일까요? 오늘 나눈 대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을 삶으로 보입니다. 자녀의 자녀들이 따라함으로, 대대로 주님의 복을 받는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세상 삶이나 신앙생활을 단순화해서, 부모를 공경함으로, 자손들이 이어가며 복 받는 가정을 이뤄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