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갈 5:22-24 말씀 제목:“좋은 열매 맺기”
9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9월을 시작하며‘익어가는 달’이라 한 것은, 9월이 한창 곡식과 과일이 익어갈 때라, 우리 믿음도 익어가자는 의미이지요. 익은 결과는 열매인데, 성경에 열매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오늘을 그것을 찾아서 나눕니다. 성경 말씀 중에, 포도나무에 포도가,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열린다는 당연한 말을, 왜 할까요? 예수 믿은 성도는 당연히 성도다워야 한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약 5장에‘너희는 어째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이웃을 저주하느냐?’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는 것으로,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예배 시작하며 읽은 마 7장 15절에‘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라 하며,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하지요. 거짓 선지자가 한 일로 그들의 거짓된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가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럴 수 없듯,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거지요.
말씀은 이어서, 무엇이 좋은 열매이고, 나쁜 열매인지 알려줍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입으로는‘주여!’외치며, 하는 행동이 하나님 뜻과 어긋난 사람은, 나쁜 열매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정성껏 드릴 뿐만 아니라, 세상에 살며, 하나님 뜻을 좇고 이루는 것이, 좋은 열매이지요. 성경에 나오는 열매에 관한 말씀을 살피지요.
먼저, 마 3:8 이하에는, 세례요한이‘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성도가 맺을 좋은 열매를 회개라 합니다. 회개는 세상을 향하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거지요. 요한은 이어서‘자신을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며,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알곡은 좋은 열매, 쭉정이는 나쁜 열매이지요.
예수님은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는데,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신 것은, 믿는 이들이 끝까지 알곡인 좋은 열매로 살라는 것입니다. 요 15장에는,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데,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많이 맺기에, 예수님 안에 있지 않아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면, 불에 던져지니까, 항상 주 예수님 안에 머물라 하십니다. 하나 더, 엡 5:8이하에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면서,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하지요.
좋은 열매는 빛의 열매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인데, 예수 믿으며 이리 살지 못하면, 어둠 속을 방황하는 나쁜 열매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너희가 나를 믿으니 무조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해.’하시지 않는 것이지요. 함께 이사야 5장 1-5절을 읽습니다.‘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 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원이라 하는데, 여호와께서 모든 좋은 조건을 마련하시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 못 먹는 들 포도를 맺었느냐? 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이 된 우리에게‘너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했는데, 어찌 너희 삶이 그 모양이냐?’하시며‘너희가 판단해 보라, 무엇을 더 좋게 해줄 수 있느냐?’
주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으나, 그중에 으뜸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믿는 자가 구원받게 하셨지요. 믿는 자는, 지옥 가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우리를 위해 더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 은혜를 받은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이어지는 말씀에, 여호와께서 들 포도를 맺은 이들에게 벌을 내리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여호와께서 바라신 좋은 포도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자로서, 정의롭고 공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에게 바르게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거칠고 포학하게 대했으며, 공의를 행하지 않아, 이웃이 못 살겠다고 부르짖는다는 거지요.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 포도를 맺은 겁니다.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웃을 진정 사랑하며 따뜻이 품으며, 공평하게 잘 대하며 살지 않으면, 우리도 들 포도를 맺는 것이지요. 이제, 갈 5장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나누기에 앞서, 갈 5:17을 함께 읽지요.‘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예수를 안 믿는 이들은 육체를 따라 사니 이런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원래 가진 육체의 소욕에, 믿은 후 성령이 들어와 함께하니, 내적 갈등을 겪지요. 내가 몸에 끌려 무엇을 하려 하면, 성령은 그러지 말라 합니다. 잘 믿으려는 이가 갈등이 심하지요. 롬 7장에, 사도 바울이 심한 갈등을 겪은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바울이, 19절 이하에 육체의 일을 길게 나열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런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겁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던 나쁜 열매를 없앨 수 있습니다.
마음에 담으며 따라 합니다.‘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여러분 스마트폰에 저장해서 수시로 보며 외우면 좋겠습니다. 우리 속에 있어야, 기억하며 키울 수 있지요. 하나씩 살펴봅니다. 사랑에 대해 잘 기록한, 요일 4장에, 하나님이 사랑이시니 믿는 이는 사랑해야 마땅하다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지요.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서로 사랑하면 그곳에 함께하시며 사랑을 더 온전하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지요.
여호와께서 주신 십계명도, 열 가지를 둘로 줄이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로, 사랑하라 입니다. 사랑의 장인, 고전 13절 마지막에‘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왜, 사랑이 제일인가요? 믿음과 소망은 속에 있어, 커도 큰지 모르지만,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사랑이 여러분 속에 자라고 있는지는, 자신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웃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어려운 이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힘껏 도우려고 하는가?’사랑의 열매가 있고, 자라는 표인데, 어려운 이에게 무관심하거나‘내가 더 힘들어, 아무도 내가 힘든 것에 무심한데, 내가 왜?’하는 이는, 사랑의 열매가 자라지 않은 거지요. 사랑해야, 사랑의 열매가 자랍니다. 다음에 희락은 기쁨이지요. 사도 바울이‘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한 것은, 그가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를 때이지요.
바울이 그런 형편에서 말로만‘기뻐하라.’했을까요? 남은 기록에 보면, 초대교회 순교자 중 많은 분이, 기뻐 찬양하며 죽어갔습니다. 성도의 희락 기쁨은 그런 것이지요. 세상적으로 기뻐할 것이 많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 많은 나를 택해, 예수 믿고 천국 영생을 누리게 하심을 기뻐하는 것인데, 이런 기쁨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니,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울은‘항상 기뻐하라.’하면서‘이것이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냉랭한 세상에, 은혜받은 성도가 앞장서, 이웃을 기쁘게 하라 하십니다. 다음은 화평인데, 믿는 이에게 화평은 하나님과 화평에서 시작하지요. 하나님과 불화한 삶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화평하게 된 것을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런 화평을 찾은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과 화평할 수 있고, 자신도 내적인 화평, 평안을 누릴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화평하게 하는 자로 살아야 마땅합니다. 가정이나 어디서나 여러분이 있는 곳을 화평하게 해야지, 여러분이 불화하게 해선 안 되지요. 다음은 오래 참음인데, 겪는 어려움이나 분노도 오래 참아야 하고, 예수님의 재림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는 이가 쉽게 화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다음, 자비와 양선인데, 자비는 어려운 이웃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고, 양선(楊善)은 어려운 이를 힘껏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비도 좋지만, 양선이 따라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귀한 참고가 됩니다. 강도 만난 자를, 종교인들은 못 본 체 피해 갔으나, 유대인에게 무시당하던 사마리아인은 정성껏 돌보았지요. 예수님께서, 말씀 끝에‘너희도 이와같이 하라’하십니다.
크게 돕는 것이 아니라도, 어렵거나 외로운 이, 아픈 이에게 다가가서 하는 따뜻한 몇 마디 위로도, 귀한 자비와 양선입니다. 충성은, 원어로는 믿음이란 뜻으로, 바른 믿음, 내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을 섬기며 그 뜻을 따르고 이루는 것이지요. 믿음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네 믿음을 내게 보여 봐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여러분의 믿음을, 주위에서 보고‘믿음이 좋은 분이라.’인정하나요? 인정 안 한다면, 왜 그럴까요? 조용한 때 살펴보세요.
다음은, 온유, 원어의 의미는 거친 야생의 말을 잡아 길들인 것을 말합니다. 영화에 보면, 거친 말이 펄쩍펄쩍 뛰면서, 타고 있는 이를 떨어뜨리려 하지요. 한참 길들여야, 말 탄 이의 뜻에 순종하는데, 그것이 온유이지요. 믿는 이는 하나님께나 이웃에게 온유해야지, 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 성질을 다 부리고‘내가 원래 이래.’아직, 성도로 길들지 않아 온유의 열매가 없지요.
마지막이 절제,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다스립니다. 쉽게 육신적인 것에 따르거나 흥분하지 않습니다. 이 역시 내 뜻과 노력으로 안 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성도의 거듭남이지요.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가‘어찌 거듭납니까?’했듯이, 거듭남이 어렵지만, 주님 은혜를 기리며 성령의 도움으로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폈는데, 이에 반하는 육신적인 것은,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분열과 방탕함으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지요. 나무를 보면 겨울에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던 가지에, 새해 봄이 되면 잎이 자라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을이 되면, 역할을 다한 잎은 아름다운 색깔과 함께 낙엽으로 떨어지며, 사과, 밤, 배, 감의 맛난 열매를 우리에게 남깁니다.
나무를 보면서 우리 삶을 돌아보면, 올 한 해 믿는 이로써 어떤 삶을 살았나요? 그것을 살피려면, 내 안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올해 얼마나 자랐는지 보면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열매들을 잘 키워가면, 주님이 기뻐하시며, 이웃에게 유익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성도로서 보람 있는 삶을 삽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한 번 더 따라 합니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사랑하는 숭덕의 성도님들, 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