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막 8:29-34 설교 제목:“고난 예고 세 번”
예수님은 세상에 나와서 사역하실 때부터, 때가 되면 십자가에 달려 죽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믿는 자가 구원받게 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세례요한도, 요단강가에서 다가오는 예수님을 향해‘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화목제물로 죽을 것을 내다 보았지요. 예수님은 복음 사역을 하다가, 우연히 반대자에 몰려 십자가에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에, 고난은 미리 아시고도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세 차례 당신이 고난 당할 것을 예고하신 말씀과 그 전후를 살피며, 주는 교훈을 나눕니다. 세 번의 고난 예고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첫째 예고는, 오늘 교독한 말씀이지요.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고 이적 행하시며,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제자들에게‘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세례요한이라고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합니다.’
예수께서‘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십니다.’마태복음에는‘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여러분의 고백으로, 마음에 담으며 따라 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만하면 이제 알려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시고,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과 죽임을 당한 후,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지요.
‘비로소’란, 당할 고난을 가르칠 때가 되어서이지요. 예수님이 드러내놓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되도록 두지 않습니다.’제자들로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될 일이지요. 세상에서 하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며 출세하기를 바랐는데, 죽으신다면 자기들은 어떻게 되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사흘 만에 살아나는 것’은, 이해를 못 하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신 후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제자들을 보신 것은, 하시려는 예수님 말씀이 베드로만 아니라, 제자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뜻이지요.‘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에는,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네 이름 위에 교회가 세워지리라.’는 등, 크게 칭찬하셨는데, 그 베드로를‘사탄’이라 하십니다. 두 가지 뜻을 담겼지요.
하나는, 당신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방해하는 베드로는 사탄이란 겁니다. 베드로가‘그러면 안 됩니다.’‘네가 하나님의 뜻을 막는 사탄의 일을 하는구나.’또 하나, 예수님이 사람의 몸이기에, 십자가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두려우니, 미음이 흔들릴까 봐 베드로를 크게 야단친 거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보아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백여 년간 논란 끝에 결론은‘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다.’
하나님이기에 앞날에 고난 당할 것을 아셨으나, 사람의 몸이라 끔찍한 고통을 두려워하셨지요. 이어서‘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당시 주위에 있던 무리와 제자들에게, 아울러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 구세주이심을 분명히 하셨고, 그런 분이, 당시 가장 참혹한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인 예수께 십자가 형벌보다 더 끔찍한 것은, 신명기 21장에 있는‘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절규하셨지요. 그 예수님을 주로 믿는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고, 살아야 하나요? 신앙생활이 좀 더 심각해야 합니다. 교회에 오가는 것,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이 귀하나, 더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신‘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자신이 지금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육체적 아픔, 근심 걱정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고통이나 피해 등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지요. 왜요? 주 그리스도시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시간에 자신이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나? 살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고난 예고는, 변화산 위의 일 후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시니, 예수께 광채가 나며, 희게 변하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어떤 대화일까, 엿들어 볼까요?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는‘주님, 제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여러 번 애써 전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을 때뿐으로 전혀 변화하지 않네요.’모세가‘저도 율법을 가르치며 훈계해도, 듣고 나서 얼마 후면 또 어깁니다.’
엘리야 선지와 모세는‘죄송하지만,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주님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어요.’제자들은, 세 분이 그리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줄 모르고, 보이는 것이 너무 좋아‘주님, 초막 셋을 짓고, 주님, 모세, 엘리야와 함께 여기 살아요.’그때 구름이 덮이며 하늘에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소리가 들리며,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님께서‘이제, 산을 내려가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과 천국이 좋음을 알려주신 후, 천국에 가려면 해야 할 것이 있음을‘내려가자.’알려 주셨습니다. 천국이 매우 좋지만,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제자들은 복음을 전해야 했고, 우리는 세상 살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지요. 예수님은 변화산을 내려오셔서, 어릴 때부터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하실 일의 하나이지요.
그 후, 예수께서‘인자가 장차 사람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고, 믿고 따르는 주님이 죽는다고 하니, 근심이 되지요. 두 번째 고난 예고는, 너무나 좋은 천국이 있음과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후,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으셔야 하고,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세 번째 고난 예고 앞에는, 마태복음은 포도원의 품꾼에 대해, 마가와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가 있지요. 먼저, 포도원 품꾼에 대한 비유를 살피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 합니다. 일당을 한 데나리온 주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일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낸 후, 9시, 12시, 오후 3시에 나가니, 아직 밖에서 서성대는 일꾼이 있어서 들여보내지요.
오후 5시 나가보니 또 있어서, 포도원에 보낸 후에, 저녁이 되자, 6시가 되자,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나중에 온 자부터 시작해서 먼저 온 자에게 일당을 주라.’오후 5시에 온 자들이 한 데나리온씩 받는 것을 보고, 먼저 온 자들이 더 받을 줄 알았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으니, 주인을 원망합니다.‘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가 어찌 같이 받을 수 있어?’
주인이 대답하되‘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너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에 온 이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은 내 뜻이니라.’말씀의 포도원 주인은 예수님이지요. 포도원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늦게까지 들어오게 한 것은,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끝까지 구원하시려는 겁니다. 주인이 길에서 포도원에 들어가게 한 것은, 구원은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이지, 우리 노력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또, 포도원에 일찍 들어간 이나, 늦게 들어간 이나 같은 구원임을 알려주지요. 혹, 나는 예수를 일찍부터 믿어서 늦게 믿은 이보다 상급이 클 거야, 아니라 합니다. 자신이 예수를 오래 믿고 수고가 많은 것 자체가, 안 믿고 세상 따라 산 것보다 큰 복임을 알아야지요. 교회 나오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라, 주님의 평안과 기쁨의 복을 누리는 거지요. 할렐루야!
포도원 비유를 하시고, 예수께서 고난을 예고하신 것은, 그러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다는 거지요. 이어져 안타까운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말씀하셨는데, 따르던 이들은 예수님 힘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자, 예수님이‘무엇을 원하느냐?’‘주님이 왕이 되시면, 제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 우정승, 좌정승을 시켜주세요.’
예수께서‘그들이 내가 마실 잔을 마실 수 있느냐?’예수님이 마실 잔이,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모르는 두 제자는 곁에 있다가 얼른‘예, 마실 수 있습니다.’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뭔지 모르지만 한 잔 못 마시겠습니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옆에 있던 열 제자가, 두 제자가 어머니를 동원해서 높은 자리를 선수 쳤다고 분하게 여기지요. 예수께서 삼 년을 직접 가르치신 제자들이 그 모양이니, 예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오늘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내 모습을 함께 살펴보세요. 전능하신 주님께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마가, 누가복음은 고난 예고 앞에, 부자 청년과의 대화가 나오지요. 청년이 찾아와‘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나요?’‘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예, 저는 어릴 적부터 잘 지켰으니 되었네요.’예수님은‘한 가지 남은 것은,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 주어라.’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떠났지요. 이 말씀 다음에, 예수께서 고난 예고를 하신 것은, 내가 너희를 구원하려고 고난 당하니, 나를 믿고서 세상의 것을 더 누리려 말고, 버리고 나를 좇아라. 이 말씀에서 마 6:33‘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가 생각납니다.
이 말씀 뒤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막 10:45을 함께 읽지요.‘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왜 십자가에 죽으시는지를 분명하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섬기려 함이요, 자신을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물로 주심으로, 믿는 자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거지요.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이웃을 섬겨야지요.
누가복음에는 고난 예고 후에, 길가에서 구걸하던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단 소릴 듣고‘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외치는 말씀이 나오지요. 오늘날, 영적으로 맹인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미리 알고도 고난의 길을 가셨고, 그로 말미암아 믿고 구원받은 너희는 힘써 외치라 합니다.‘예수님, 저희 영적 눈을 뜨게 하소서. 천국 영생을 내다 보며, 항상 감사찬양으로 살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초대교회 때 자주 거론되던, 하나님이라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고, 십자가 고난을 매우 두려워하셨음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로 알 수 있지요.‘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우리를 위해 당하셨음을 마음에 새기며, 신앙생활을 심각히 여겨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여러분이 모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