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 23:13-18 설교:“화 있을진저!”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요. 무엇이 신앙생활인지 생각해 봤나요? 보통, 교회 다닌다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생활과 신앙생활은 같은 겁니까, 다른 것입니까? 흔히 따로국밥이라 말하지요. 국 따로, 밥 따로처럼, 세상에서는 세상 따라 살다가, 주일이니 교회에 가야지, 이제부터 신앙생활, 그리들 생각하지 않나요? 그리 살면, 세상의 삶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이는, 삶이 모두 신앙생활이어야 하는데, 그리 살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먼저, 예수 믿는다는 것과 믿음으로 얻고 누릴 것을 잘 모르거나 믿지 않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음에 감사하며, 이 땅을 하나님 자녀답게 살다가, 때가 되면 저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믿어서 얻어 누리는 것, 분명히 알아야지요. 이를 알면, 육신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으며, 점점 영의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이지요.
그러려면, 우리는 자주 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잘 먹고 살라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요, 죽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신 것도, 이 땅에서 네 소원을 이루며 살아라, 아닙니다. 이런 당연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직 적지 않은 교인이 여기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머물면 삶 따로, 신앙 따로 되기 마련이지요.
또 하나, 믿는 이가 바로 알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요, 복 주시려는 것이지요. 요 3:17에‘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그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 마태복음 앞인 5장에 팔 복이 나오고, 화의 말씀은 오늘 읽은, 끝나가는 23장에 있습니다. 먼저, 팔 복을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의 뜻이, 가르쳐준 팔 복대로 살며 복 받아 누리라는 거지요.
우리가 누리려 할, 팔 복을 마음에 담기 위해, 마 5:3-10을 찾아 천천히 읽습니다.‘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믿고 이렇게 살면 복을 받습니다. 그 중에, 시작과 끝이‘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음에 담아야지요. 성도가 믿고 누릴 것은 천국 영생입니다. 사역 시작에, 팔 복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사역을 다 마쳐가실 마 23장에,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서기관은 구약성경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해석해서 가르치는 성경 박사들이고, 바리새인들은 신앙생활에 철저해서, 엄격한 생활을 하기에 힘썼습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괴롭힌 바리새인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나,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키는 데 그들의 공이 큽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하는 말은 들어야 하나, 하는 행동은 본받지 말라 하신 것은, 말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예수쟁이가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뜬다 같지요. 사랑, 사랑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기에 그럽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오래 믿은 이, 직분자들을 향하신 말씀이라 여기며 살펴보지요. 먼저, 마음에 담을 것은, 예수님께서‘화 있을진저.’하셨으나, 본뜻은‘바로 깨닫고 주님의 복을 받아 누리라.’입니다. 복 받을 길을 그리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는데, 왜 그 길을 따르지 않고, 화 당할 길을 가느냐? 돌이켜서 주님의 크신 복을 받아 누려라.
왜, 오래 믿은 이가 그리 해야 합니까? 주위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화 있을진저!’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13절에‘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게 하지 못하게 한다.’이걸 처음 말씀하신 것은, 믿는 자에게 천국이 으뜸임을 알려주시지요. 오늘날, 먼저 믿어 오래 믿은 이들, 직분자들, 믿는 부모들이, 천국 문 앞에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도 막고 있지 않나요?
‘천국 지옥은 없어!’하거나, 그리 말은 안 해도,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듯 살면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에 온 힘을 다 쏟으면서도, 주님의 명인‘거룩하라.’와‘이웃 사랑’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옆에서 보는 이들에게, 천국 문을 닫는 것이고, 들어가려는 이들을 막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다른 각도로 말씀하신 것을 살핍니다. 예수님께서‘내가 땅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과‘내가 온 것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불화하게 함이라.’
이 말씀에‘말도 안 돼, 화평의 에수님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해?’하지요.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 땅은 잠시오, 우리 본향은 저 천국이며 너무나 좋고, 주님과 영원을 함께 하는 곳이란, 믿음이 확실해야 합니다. 너무나 좋으니 다퉈서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천국으로 인도하라는 거지요. 우리에게 이 땅만 살다가 끝이라면, 굳이 가족과 다툴 게 없습니다.
숭덕학사의 왕 선배이신, 고 이 종성 목사님 누나는 복음을 듣고, 교회 다니며 가족들에게 갖은 핍박을 당했지요. 어린 동생을 업고 애 본다며, 교회로 달려가곤 했으나, 결국 박해를 못 이겨 가출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 누나를 통해 어머니가 예수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동생이 목사님이 되고, 장신대 총장으로 수많은 목사들을 양성 배출하고, 한국의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누나가 그러지 않았으면, 이 종성 목사님이 없었지요. 누나가, 예수님 말씀을 이룬 겁니다.
13절 말씀을 생각하며, 내가 천국에 들어가려는 이를 막고 있지 않나,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15절은 더 심해집니다. 한 성도를 얻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지만, 그리 얻은 이를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요사이, 교회에 안 다녀 본 사람,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요. 전도나 이런저런 노력으로, 교회에 나왔는데, 교회 예배나, 믿는 이들의 행실을 보고 실망해서 다시는 교회에 안 나간다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내가 성도답지 살지 못함으로, 다른 이가 보고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빗나간다, 참 염려스런 일인데, 주위에 흔히 보입니다. 자식의 경우‘다 큰 자식 어떻게 해.’아니고, 지금부터라도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됩니다. 보고 교회 나갑니다. 16절에‘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하면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이 말을 쉽게 풀면, 교회를 다니며 주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보다, 돈 벌기를 바라는 거지요.
내가 헌금하니, 백 배, 천 배로 늘여주세요.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모셨듯, 돈을 섬기고, 돈이 최고라는 교인의 삶인데, 이를 예수님께서 맹인들이라 하십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오래 믿은 이들이, 삶에서 주님보다 돈을 더 밝힌다, 자신도 구덩이에, 따르는 자도 구덩이에 빠뜨립니다. 예수님 말씀이니, 구덩이는 지옥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23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십일조는 철저히 하면서,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화 있을진저’하십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한다고, 원래 하는 곡식, 포도주, 기름은 물론이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 즉 조미료까지 신경을 쓰지만, 막상 더 중요한 정의, 긍휼, 믿음을 버렸다 합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철저히 하면서, 성도로서 정의로움,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 바른 믿음을 가지라 하시지요.
달리 말하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의롭지도, 이웃 사랑도, 천국 영생의 믿음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25절에‘화 있을진저’는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너는 먼저 안을 깨끗하게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이어진 말씀도 비슷하지요.‘너희가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유대인들은, 무덤의 바깥을 하얀 회를 칠해, 아름답게 보이려 했으나, 무덤 안은, 시체와 더러운 것이 가득할 뿐이지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 돌을 치우라 할 때'치우면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 말입니다. 이 말씀에는, 너희가 겉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꾸미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갈 뿐이니, 그러지 말고, 속을 깨끗하게 힘쓰라. 속에 든 것이 그대로 나오니, 탐욕과 불신, 미음들은, 회개하며 버리기에 힘쓰고, 빈자리에 하나님 말씀과 선한 마음, 사랑과 공의로 채워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겉을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선한 것이 나옵니다. 그것이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팔 복의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그러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습니다.‘힘들어 난 못해, 안 해.’할 수 있으나, 우리힘으로 힘들기에, 우리 속의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분이기에, 우리가‘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어요.’해야, 성령님이 기브게 도우십니다.
마지막으로, 29절에‘화 있을진저’는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살았더라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우리는 착하나 조상들이 잘못했어,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너희도 마찬가지야. 그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죽이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지요.
선한 척하는 것이 너무 가증스러워, 온유하신 예수님이‘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 심한 말을 하십니다.‘사가랴가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하신 대로, 그들은 곧 의로운 예수님을 죽였고, 그 후손 유대인들은 그 피로 인해, 도처에서 박해를 당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지 않으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임을 항상 마음에 둬야지요.
이를 심각히 받아들이는 성도는, 신앙생활을 건성, 되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선 안 되지요. 정리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것만 아니라, 믿는 자답게 세상에서 사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삶 따로, 교회 삶 따로 아닙니다. 그리 살려면, 믿는 우리 앞에, 예수님의 피 흘리신 십자가와 우리가 누릴 천국 영생을 항상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골로새서 3장에 있는‘겸손하게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에 마음에 둘 것은‘외식하는’이란 말씀이 거듭 나오는데, 겉만 믿는 체, 거룩한 체, 사랑하는 체, 목사 장로 권사인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따로 국밥이 아니라, 항상 삶과 믿음이 함께, 겉과 속이 같게 살기에 힘써야지요. 우리는 힘드나, 마음먹으면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하나 더, 오늘 말씀에 기억할 것은, 나로 인해 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선 안 됩니다. 그것은, 자녀와 주위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 해야지요.
기왕 예수 믿는 것을 바로 믿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로 마련해주신 팔 복, 그중에도 가장 귀한 천국 영생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 살기에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말 안 해도 교회에 나옵니다. 이천 년 전 처음 오신 예수님은, 화가 아니라 복을 주러 오셨지만, 이제 다시 오실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날, 여러분은 물론이요, 자녀와 주위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 품에 안겨‘착하고 충성된 종아.’칭찬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