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전 10:31-11:1 설교:“사람의 제일 목적”
국민일보에 보니, 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의 1위로 응답자의 32퍼센트가, 교회다움, 목사다움, 성도다움을 꼽았습니다. 교회는 교회, 목사는 목사, 성도는 성도다워야 하지요. 압도적 1위로 꼽은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목사가 목사답고, 성도가 성도다우면, 교회는 교회다워지는데, 말하기 쉬우나 어렵습니다.‘당신이 그렇지 못해’할 것이 아니라‘나 자신부터 목사답게, 성도답게’힘써야지요.
두 번째 과제는, 영성, 예배, 전도의 회복이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은, 영성이 약하고, 예배의 능력이 없으며, 전도가 약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교인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 알게 해 달라 합니다. 저 멀리 계신 구세주보다 가까이 있는 인간 예수, 내가 닮아갈 수 있는 예수를 알고 싶은 거지요.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보고 듣고 배워서 닮고 따르라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해, 오늘 이 소요리 문답집을 소개합니다. 지난 4백여 년간, 장로교단의 교리를 가르쳐주는 책으로 이용되고 있지요. 다른 교회는 주일 오후 예배나 수요금요기도회 때 나누는데, 우리는 그럴 여건이 못 되어, 이 시간 살펴봅니다. 장로교의 중요교리를 107가지로 나눠 질문하고 답하는데, 성경, 죄와 타락, 구속자, 성화, 율법 등입니다. 오늘은, 제일 첫 질문이‘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따라합니다.‘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느 대학의 믿음 좋은 노교수가, 박사과정을 하는 학생에게 묻습니다.‘학생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학생은 다 알면서 왜 묻나 하면서도, 교수님이 물으니‘열심히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빨리 받는 게 목적입니다.’교수는‘그다음은?’‘교수가 되는 거지요.’‘그다음은?’‘결혼해서 가정을 꾸립니다.’‘그다음은?’‘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저서를 내고 학계에서 이름을 얻는 거지요.’‘그다음은?’학생이 한참 생각한 후‘늙어 은퇴하고, 때가 되면 죽겠지요.’
노교수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죽음 후를 생각하며 믿도록 그런 질문을 했고, 제자는 교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었습니다. 대체로, 어린이, 청소년 때까지 부모의 뜻에 끌려가지요. 저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기회 닿는 대로‘이제는 자신의 길을 너희가 스스로 결정할 때’라 합니다. 청년들의 주요관심은 취업인가요? 중년, 장년이 되면 생활을 꾸려가느라, 눈앞에 일에 급급해, 사는 외에 목적을 가질 여유가 없지요. 노년이 되면, 그저 하루를 삽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사회가 특히 심하다는데,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고, 학비와 취업 때까지 뒷바라지, 결혼비용 대다 보면, 자신의 노후대책이 빈약합니다. 오래 살아서 팔구십 세가 흔한데, 모아둔 돈이 없으니 고생이 뻔하지요. 자식도 자기 살기에 급급합니다. 노년이 되면, 무슨 목적으로 살까 생각하기는커녕, 건강한 분은 할 일이 없어 무료하고, 몸이 아픈 분들은 병에 눌려 고통스레 삽니다. 요양병원에 가보면, 그런 분들이 모여 하루하루를 그저 살고 있지요.
다 아는 이야기를 왜 주절주절할까요? 과연 그렇게밖에 살 수밖에 없는가?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지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해답의 하나가, 소요리 문답의 첫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인‘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알고, 그리 사는 것입니다. 그리 살면, 의미 있게 살고, 무료할 겨를이 없지요. 어린이와 청소년은 살아갈 목표를 갖게 되고, 청장년은 목표를 이루어 가며, 노년은 보다 의미 있는 영생을 보내게 됩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했지요. 기쁨이란 뜻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즐겁게 영원을 살았으나,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점점 자신을 중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험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고, 자기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만 생각하게 되었지요. 한 그림은, 일, 공부, 결혼, 오락, 모두를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는 삶과, 다른 그림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삶은 사람의 원래 모습이고, 자기중심은 타락한 후의 모습이지요. 그러니, 오늘 나누는 사람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겁니다. 함께 읽은 성경말씀에‘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바로 그 말이지요. 사도바울은‘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했는데, 바울이 예수께 본받은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지요. 하나님이 하나님답게 인류 사랑을 이루시도록, 예수님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지요. 바울은 그 희생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복음을 전 세계에 널리 전했는데, 그런 자신을 우리에게 본받으라 합니다.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깨달으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게 되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좀 더 상세히 살펴봅니다. 먼저, 우리가 사는 모든 주위의 것들을 하나님이 마련해주셨지요. 아름다운 환경과 좋은 물과 공기를 주셨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사람이 마음껏 누릴 여건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창 1장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사를 읽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너무나 좋게 지으시고, 마지막 날 사람을 지어 모두 누리며 살게 하셨구나, 참 감사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떠가는 구름, 새와 짐승들을 마음을 열고 쳐다보며, 아, 그 꽃 참 아름답네, 새가 어찌 저리도 즐거이 재잘거리나, 그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겁니다. 늘 있는 자연이라며 무심히 여기든지, 내 삶이 어렵거나 몸이 아파‘지금 내 눈에 떠가는 구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그럴 수는 있으나, 그러는 중에, 점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서 멀어져 감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하나님 중심을 되찾아야지요.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을 되찾게 해주셨기 때문이지요.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이 땅의 삶이 다한 후에, 믿는 이들은 저 천국에 참여해서 영생을 누리기에, 그리 해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고, 영생을 누리면, 자연히 주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합니다. 여기서 알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영화롭지 못한 하나님을 우리가 힘써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로서, 원래 영화로운 분이십니다. 영화를 받으셔야 마땅한데,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모시지 못하던 것이지요. 돌아서 하나님을 향하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며,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지요.
셋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신 28:2-4을 함께 읽습니다.‘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따르면, 많은 복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어진 신 28장 말씀에, 청종하지 않으면 일어날 저주도 상세히 알려주시는데, 우리에게 그리 살다가 저주를 받으라, 절대 아니지요. 뜻에 순종하며 예비하신 복을 누려야지, 행여 그런 저주받을 짓은 생각지도 말라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러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십니다.
이어, 주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해서 받아 누리라 하시지요. 요 15:7에‘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무엇이든지 구해서 누리라, 하나님 사랑이지요.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은, 그래야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일곱 살 난 아들이, 마트에 엄마를 따라갔다가, 시퍼런 식칼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사 달라 떼쓴다고 사줄 부모는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선 주시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이것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며, 내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학사의 젊은 형제들이 특히 마음 쓸 일이나, 백세시대를 맞아, 연세를 든 분도 자신과 이웃에 도움이 될 것을 찾아 이루려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며 이뤄주시고, 그를 통해 더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내게 됩니다. 나는 늙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아니고, 할 일을 찾으면 찾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삶이지요.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쁘게 살길 원하십니다. 바울은 빌 4:4에‘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여러분 중‘목사님, 제 형편도 모르면서, 말씀에 있다고 그저 기뻐하라고만 마세요.’하는 분계시나요? 이 말씀을 쓴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든‘바울 나와.’하면 처형을 당합니다. 실제, 얼마 후 목이 베어 죽었지요. 그런 바울임을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달라지지요. 바울은 그럼에도, 자신이 기뻐하며, 교우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합니다.
그럴 수 있은 것은, 죽어도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을 누릴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지요. 빌 1:23,24에‘내가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바울은 어서 죽어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으나, 살아 있어야 너희에게 유익하기에 산다. 연세든 어른들‘나는 천국 가고 싶으나 너희 믿음의 본이 되려고 산다.’마음을 그리 먹고, 그리 살도록 기도하세요.
살펴본 대로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뿐 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아픔이나 고난도 잘 이겨낼 길을 주셨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감당할 성경 말씀 몇 곳을 알려드립니다. 약 1:2-4에‘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살면서 겪는 시련이나 고난을, 기쁘게 여길 것은,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함으로 온전하여져서 부족함이 없게 되니 그렇지요. 우리말에‘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젊을 때 고생한 사람은 의지가 굳어 나중에 웬만한 어려움은‘이것쯤이야.’하며 이겨내지만, 젊을 때 좋은 환경에서 시련 없이 자란 이는, 조그만 어려움에도 쉬이 꺾어집니다. 젊은 때는 다시 일어서면 되지만, 중년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없지요. 안 믿는 이도 그러하지만, 믿는 이에겐 주님이 함께 하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벧전 1:6 이하에,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탄압받는 성도들을 향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할 것은, 시련으로 믿음이 더 확실해져서, 예수님 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성도가 겪는 시련은,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해줍니다. 신앙의 선배들 중에는, 잡혀가 매를 맞으며, 매를 맞아보며, 주님이 십자가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조금이라도 깨달으니 감사합니다. 그런 성도는 훗날 예수님께서‘착하고 충성된 종아!’크게 기뻐하며 품어주시지요.
고난 당한 욥이 말한 욥기 23:10을 함께 찾아 읽지요.‘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과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은, 자식 다 잃고, 많던 재물이 다 날아갔음에도, 그 시련을 통해, 내가 순금과 같이 되어 주님 앞에 서리라. 성도에게, 이 땅 삶은 천국의 훈련장이라 하지요. 훗날 천국에 가서 주님 앞에 설 때에 흠과 티가 없이 서기 위해 단련을 받는 삶입니다.
하나 더 히 12:6이하에‘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징계가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하나님은 우리가 참아들이라서 때로 시련을 주십니다. 어려움을 겪으며, 하나님이 나를 친아들로 생각하시는구나, 큰 위로가 되고 이겨낼 새 힘을 얻습니다.
오늘 소요리 문답을 나누며, 우리 믿는 성도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모든 주위를 하나님이 잘 마련해주셨기 때문이지요. 창 1장에, 천지를 지으시며‘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그런 에덴을 쫓겨난 후에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 회복할 길,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지요. 아울러, 이 땅에 살 동안에도 주님 뜻을 이루며 복을 누리며 살게 하셨지요.
그뿐 아니라, 살면서 겪는 고난과 시련, 아픔조차, 그를 통해 우리를 연단해서 하나님께 더 합당한 성도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인 줄 알았으니, 하나님을 더 하나님답게 잘 모셔야지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잘 모시는 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러면 자연히 주님을 영원히 즐거워하게 됩니다.
시작하며 말씀드린, 교회가 회복할 과제가 교회다움, 목사다움, 성도다움이라 했습니다. 우리 숭덕교회가 그리되면 참 좋겠지요. 목사인 저도 더 힘쓰겠으나, 여러분은 지금 내 삶의 중심이 누구인가 살펴서, 하나님 중심으로 더 옮겨가기를 권면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성도다운 삶이지요. 이 땅에서 주님의 복을 충만히 누리다가, 영생에 참여합니다. 숭덕교회가 한결 교회다워집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