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히브리서 13:12-16 설교:“민족의 동반자”
새해 몇 분은 처음 뵙네요. 서로 인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두어 차례 말씀드렸죠? 새해에 말로‘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으로는‘새해 새로워지세요.’새로워지면, 더 복을 받을 수 있고, 믿는 이는 능히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복 주세요.’하면‘그래 어디에 줄까?’막상 받을 그릇이 없거나, 그릇이 작거나, 더러운 게 꽉 차 있으면, 복을 주셔도 받을 수 없지요. 새해, 깨끗하고 큰 그릇을 준비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으며, 기분이 좋았던 것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한 학사 형제가 스마트 폰 문자로‘2018년 학사에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효도하게 되어 감사합니다.’문자 받고 기분 좋았습니다. 형제들이 이런 마음이면, 학사가 제 일을 잘 하고 있는 거지요? 또, 한 교우님이‘목사님, 창세기 40장까지 읽었습니다.’새해에 성경을 통독하자는 제안에 따라주시니 감사하고 기쁩니다. 저는 교우님들이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기도합니다. 복 받으려면, 성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오늘은 새해표어를 함께 나누는데, 앞 현수막을 보면서 함께 합니다.‘영적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표어에‘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한 것은, 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올해가 기미년 삼일 독립만세 운동 백 주년입니다.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한 것을 되새기며, 어려운 형편에 있는 민족을 한국교회가 돕고 일으키자는 것과, 또 하나는, 작년부터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힘을 모아 돕자는 겁니다. 무엇보다,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지요.
백 년 전인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나라 잃고 10년이 지나 독립의 소망이 거의 사라질 때지요. 전국을 일본순사와 헌병이 움켜쥐고 있어, 애가 울면‘일본헌병 온다.’하던 것에, 민족의 슬픔이 담겼지요. 독립의 소망이 사라지고, 친일파들이 늘어갑니다. 고종황제가 돌아가심을 기회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교회와 기독교인이 앞장섰지요. 조선인들이 나라를 되찾으려 함을 국내외에 힘껏 알렸습니다. 그해 가을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지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들어갑니다.
3.1운동에 기독교인이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1907년 기독교의 대 부흥운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비율은 1.5% 인 20만 명도 안 됐지만, 뜨겁고 바른 믿음과 나라사랑이, 일제의 총칼에 과감히 맞서게 했지요. 교회와 교인들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대 부흥 운동을 생각하며, 올해표어를‘영적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한 겁니다. 교회의 부흥은‘교회가 많이 부흥하셨어요?’는‘교인 수가 많이 늘었어요?’로 이해하지요.
이런 생각들을 흔히 하기에, 교단에서 내려온 올 표어설명서에‘영적부흥은 외형성장을 의미하지 않고, 복만 바라는 기복주의를 의미하지 않으며, 개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이 말은, 영적부흥이, 교인 수가 늘어 커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으면 건강과 물질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며, 우리 교회만 성장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바른 영적부흥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외형이 커지기보다, 내적인 충실을 힘쓰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믿음의 길을 인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요,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겁니다. 한국교회들이 바른 방향을 잡고 노력하면, 영적부흥이 되고, 성도들이 다른 곳에 가서가 아니라, 사는 자리에서 내 삶으로 민족의 동반자, 도우미가 될 수 있지요.
민족의 동반자가 되려면, 우리 민족이 처한 어려움을 알아야지요. 정부가 노력하지만, 빈부의 차이는 커져갑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가난한 자가 더 벌게 하자는 뜻인데, 아직 부작용이 많지요. 일본과 미국은 일자리가 넘쳐 사람이 귀한데, 우리는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살기 힘드니 출산율은 낮아지고, 사회가 돌봐야 할 연세든 분은 엄청 늡니다. 그간 한국을 이끌던 조선, 반도체, 차량 수출이 벽에 부딪쳤지요. 작년에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는 텄으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런 일에 내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우리가 영적부흥을 이뤄감으로, 매사에 주님을 의지한 바른 생각과 삶을 살면, 민족의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면, 요사이 남을 비판, 비난하는 것이 극성인데, 성경말씀에 따라 비판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내 욕심을 부리거나, 지나친 염려를 삼가는 것도, 성도들이 먼저 본을 보여야지요.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잘 풀려가길 기도하는 것이, 우리 몫이지요.‘더불어 잘 사는 나라, 공의가 하수 같이 흐르는 이 나라 되게 하소서.’기도하세요.
어떻게 영적 부흥을 이룰 수 있는지, 함께 읽은 말씀이 일러줍니다. 먼저, 그의 치욕,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자고 합니다. 믿는 사람의 시작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치욕의 십자가를 친히 지셨습니다. 능히 피하실 수 있었으나, 하나님아버지의 인류구원의 뜻을 아시기에 순종하셨지요.
치욕과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으나, 예수님께는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씀을 알기에, 예수님도 유대인인지라, 나무인 십자가에 달린 것을, 죽음보다 더 고통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가?’절규하신 겁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그런 치욕을 다 감당하셨지요.
믿는 이들은 이를 기억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신‘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자기 십자가라 해서, 겪고 있는 아픔이나 가난, 가정의 불화 등이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환난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자해서, 엄청난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살며, 성도다운 마음을 갖고 사랑의 말과 실천을 하는 거지요. 주위 다른 이들로부터‘저분은, 예수를 바로 믿는 분이야.’평을 듣는 겁니다. 치욕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성도답게 살기에 더 힘써야지요.
치욕의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것은, 두 번째인 영문 밖으로 나가자와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가장 귀하고, 예루살렘 성내를 정결한 곳이라 여긴 반면, 영문 밖인 성 밖은 더러운 곳, 죄스런 곳으로 여겼지요. 가난한 자, 병든 자,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살고, 성내 쓰레기를 모아 불태웠습니다. 죄수들을 처형하는 곳이지요.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가난한 자를 돌보고, 병든 자, 나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셨으며,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에 나가 돌아가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셨지요.
그 주님은 우리가 영문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예수 믿어도, 성내로 모이려 힘쓰지요. 잘 살고, 누리고, 자랑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영문 밖으로 나가셨는데, 우리는 대체로 반대 방향으로 가지요. 그러니 안 믿는 이들이 보기에‘예수 믿는 이가 뭐 저래?’안 믿는 이들은, 성경을 읽지 않으나, 믿는 우리의 삶을 봅니다. 서 서평이란 간호선교사를 소개합니다. 미국 여인으로, 본명이 엘리자베드 쎄핑인데, 한국에 와서 봉사하며, 한국인이 부르기 편리하게 서 서평으로 바꾸었지요.
미국서 간호사를 하며, 교회를 다녔는데, 믿음이 자라가자‘내가 무엇으로 주님의 은혜를 갚을까?’고민하게 되었지요. 어느 선교사가‘동방의 조선에, 가난한 자와 환자 등, 도움을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길 듣고, 1912년 간호사를 하며, 복음을 전하러 조선에 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본받아 영문 밖으로 나간 거지요. 당시 조선은 참담해서, 거지와 환자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녀는 특히, 여인들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시집갔다가 소박맞거나, 아파도 돌볼 이가 없는 것을 보고 불쌍해 돌보았지요.
본국에 보낸 선교보고서에‘조선에서 만난 여인 오백 명 중에 자기 이름을 가진 여인은 열 명밖에 없다. 큰 년, 작은 년, 돼지 할머니, 등으로 불리며 사람다운 대접을 전혀 못 받는다.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가르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입니다.’살기 어려운 이들을 먹이며 구제하는 것보다, 먼저 힘쓸 것이, 신앙과 교육을 베푸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일 여자신학교를 세워, 많은 여인들을 배움과 믿음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을 위해 소록도에 나병 전문 시설을 시작하게 한 이도 그녀입니다. 1934년까지 22년을 봉사하다가, 굶주린 이들을 돕던 그녀가 영양실조로 죽었는데, 남긴 것은 강냉이 가루 2홉, 동전 7개, 모포 반장이 전부였습니다. 철저한 영문 밖 헌신이지요. 미국장로회가 1930년대 세계선교를 빛낸 7명 중의 한 분으로, 서 서평 선교사를 정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기까지, 이렇게 영문 밖으로 나가 헌신한 분들이 많지요.‘서 서평 그분 참 대단하네, 큰일 했어.’아는 것으로 부족하지요.
나 자신이 지금 형편에서, 내게 영문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나, 내 가족만 생각하지 말고,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까, 기도하며 찾아 행하는 것이, 새해 새로워지는 겁니다.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란 말을 합니다. 교회는 일단 모여서 예배드리지만, 흩어져 나가 가정이나 이웃에서 성도다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족의 동반자이지요.
세 번째로, 14절에‘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음으로, 장차 올 것을 찾는다,’주님의 치욕을 짊어진다거나, 영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천국의 소망이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천국을 확신하고 소망해야 영적 부흥을 합니다. 기독교 이천 년 역사를 보면, 천국을 믿을 때는, 환난과 박해당하면서도, 믿음이 순수했고, 복음이 빨리 전파되었으나, 박해가 사라지고, 평안히 살게 되니, 교회가 타락하고,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박해가 심할수록, 더 천국을 소망했기 때문이지요.
만일, 우리에게 이 땅이 전부라면, 편안히 즐기며 살면 그뿐이지만, 아니지요, 천국과 지옥, 내세가 분명히 있습니다. 없다면 기독교가 지금껏 이어 오지 않았지요. 천국을 소망하면, 넷째인,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립니다.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는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의 제사, 예배를 드리지요.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귀한 것이,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이듯, 찬양이 귀한 것은, 예수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심을 밖으로 증언하기 때문이지요.
항상 찬송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은, 매일 올려드리는 찬송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온전한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 앞에 더욱 사랑받는 성도들이 되어가지요. 이렇게 귀한 찬양을 담당한 성가대원들은 참 복된 분들이고, 일생을 찬양과 함께 하신 여 홍은 지휘자님은 복이 많은 분입니다. 오죽 찬양이 귀하면, 시편 시인이‘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했겠습니까? 지금 숨을 쉬는 분은 다 찬양하세요.
치욕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려면, 천국영생의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러면 입으로 찬양하고, 손과 발로는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줍니다. 그런 보통 나눈다 하면‘나는 없어서 못 줘. 주려면 크게 줘야지.’그렇지 않지요. 또, 돈만 아닙니다. 어려운 이를 돈으로 구제하는 것 못지않게 필요한 일이 외로운 이들과 함께 하는 거지요. 마트에 가서 혼자 먹는 음식이 많아짐을 보면, 외로워져서 나 홀로가 되어가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지요.
사람은 결코 그렇게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 거기서 온갖 불행이 일어납니다. 성도들이 다가가, 외롭고 힘든 이를 정성껏 도와야합니다. 이웃의 한 두 사람이라도 돌보면, 그것이 민족의 동반자 되는 거지요. 치욕의 십자가를 짐, 영문 밖으로 나감, 천국영생을 믿음, 항상 입으로 찬양, 오직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눔, 다섯 가지를 말씀을 드렸는데, 각기 따로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함으로 더 아름다운 영적부흥을 이루어갑니다.
여러분, 만일 130년 전에, 하나님이 선교사를 보내지 않아, 기독교가 이 땅에 오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셨나요? 조선인의 무지와 가난은 오래 갔을 것이고, 일제 식민도 더 오래 계속되었을 겁니다. 아예, 조선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지요. 역사상 있다 사라진 나라는 많지요. 하나님이 이 민족을 크게 사랑하셔서 복음을 전해주셨음에 감사하며, 우리는 내가 사는 자리에서, 보다 더 이 민족을 위해 헌신해야지요. 그러려면 자신의 영적 부흥을 힘써야합니다.
한 이야기를 하고 마칩니다. 일제시대에 어느 연회자리에, 기독교인인 이 상재 선생이 매국노 이 완용과 송 병준과 함께 했는데, 불쑥‘두 분은 일본에 가셔 사시지요.’‘왜, 그런 말 합니까?’‘나라를 망하게 하는 재주가 놀라우니, 일본에 가면 일본이 망할 거 아닙니까?’참 담대한 말이지요. 기독신앙을 가졌기에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부흥을 함으로 어디서나 담대해졌으면 합니다. 어디서나 성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능히 이 민족을 이끌 동반자가 됩니다. 모두들 그리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