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반의반>

How soon hath Time, the subtle thief of youth,

Stol'n on his wing my five-and-twentieth year!

 

시간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릅니다. 2017년 10월 2일이 되면 저는 만으로 25세가 됩니다. 저희 세대의 기대수명이 100세라고 치면 인생의 반의반을 산 셈입니다. 저는 나이를 만 나이로 계산하기 때문에 새해보다는 생일이 더 두렵습니다. 그리고 매년 생일을 맞을 때마다 저는 축하 대신 반성을 합니다.

“아... 또 이렇게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구나...”

 

만25세는 저에게 특히 더 두려운 것 같습니다. 위대한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부터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작품을 내놓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습니다. 오슨 웰즈는 만25세에 <시민 케인>이라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게다가 그는 연출만 한 것이 아니라 각본에 주연에 제작까지 다 해먹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난 재능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도 괜히 조급해져서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폴 세잔과 같은 대기만성형 아티스트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나도 그 몇 안 되는 late bloomer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하며 자기위로를 합니다.

 

<숭덕에서의 1년>

시간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빠릅니다. 숭덕학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첫 숭덕제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숭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난 1년 동안 숭덕학사에서 생활하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것 같습니다.

 

1. 건강

작년 여름, 숭덕학사에 들어왔을 때 저는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매일 1~2회씩 진통제를 복용했고 그래야만 남들처럼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통제 없인 못 살던 시절은 이제 갔습니다. 현재 저는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통증이 심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만 진통제를 챙겨먹습니다.

 

저의 음주원칙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지병 때문에 술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존심이 강하고 사람들과 노는 것을 워낙 좋아하여 더욱더 술잔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었는데 첫째는 편한 사이의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고 둘째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마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이 원칙이 잘 지켜졌고 2016년 1년간은 한 번도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올해엔 사람들을 만날 때 술이 보이면 그냥 마셨습니다. 두 번 정도는 많이 취해서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건강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만 올해부터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것을 더 우선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음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진 않았습니다. 아마 인생을 즐기다보니 정신건강이 좋아져 신체건강까지 덩달아 좋아진 것 같습니다. 확실히 건강에 있어서는 mind over matter의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진로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진로에서 ‘답이 없는’ 진로로 급선회했습니다. 저는 작년 말에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진로를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제가 갑자기 사고를 쳐서 애를 낳지 않는 이상 앞으로 계속 이 배고픈 길을 걸어갈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를 습작기로 삼고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글만 쓰는 일이 이렇게 고독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주변에 저와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시간이 지날 때마다 창작에 대한 의욕이 점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는 영화판 등에서 궂은일을 하며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물론, 글은 중간에 틈틈이 계속 쓸 생각입니다.

 

3. 신앙

커밍아웃을 하자면 저는 유치원 때부터 유물론자였습니다. 물론 그땐 유물론이 뭔지도 몰랐지만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항상 matter over mind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기독교를 믿는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25년 인생 내내 신앙심이 없었고 숭덕학사에 들어올 때도 사실상 비신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심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던 저에게 올해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 종교를 가진 이들이 왜 그리 많은지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으며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과정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불현듯 떠오르는 위대한 생각을 흔히들 epiphany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의 머릿속이 아닌 머리 외부에 있는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힘으로부터 나온 생각을 뜻합니다.

 

저도 창작을 하다 보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창작활동을 주관하는 절대자를 상정하게 되었고 올해 여름에는 생애 처음으로 CCM을 직접 찾아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King&Country의 노래들 완전 좋습니다!) 또한 <벤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은 기독교 영화들도 보았고 이를 통해 신앙심이 더 깊어졌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에게 믿음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술이 저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좋은 믿음을 이어나갈 생각이며 올해 하반기에는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여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신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