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롬 12:1-13 설교:‘구원받은 성도의 삶’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해 세운 교회에 편지 쓰면서 같은 방식을 택합니다. 편지 앞부분에 바른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고, 뒷부분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가르치지요. 예수 믿는 것도 귀하지만, 믿은 자답게 살아야, 복음을 제대로 믿은 것이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로마서도 앞의 8장까지는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설명하고, 9장에서 11장은, 동족인 유대인이 믿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믿으라 합니다.
롬 12장부터는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가르치지요. 시작에‘형제들아’하며 교우들을 친근하게 부르는데, 자매도 포함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심각함을 알려줍니다. 예수 믿고 그저 교회에 오가는 정도가 아니지요. 구약에, 짐승 제물을 죽여서 바쳤는데, 산 제물, 살아 있는 제물로 우리를 하나님이 기쁘시게 드리라 합니다.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 우리가 믿고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으며 너희도 그리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영적으로 거듭났음을 믿어야지요.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바울이 바로 가르쳐 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하고, 본받지 않기 위해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매우 어렵지만, 천국 영생을 소망하는,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그리 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산 제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요. 이어서, 바울이 은사에 대해 말한 것은, 우리 마음의 변화를 이루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삶에서 나타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내 위로의 은사로 이웃이 큰 위로 받음을 보면, 내게 이런 능력이 있구나,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은사에 대해 설명하기를, 사람의 몸에 머리, 몸통, 팔, 다리, 머리에 눈, 귀, 코, 등이 있어 각지 다른 기능이 모여 한 몸을 잘 이루듯이, 은사도 그러하다 합니다. 다른 성경에 쉽게 설명하기를, 머리가 발 보고‘너는 더러운 땅을 밟고 다니니 내가 너보다 더 귀해.’그럴 수 없다 하지요. 발이 없이 머리만 굴러다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 몸의 지체가 각기 맡은 역할이 다르나 귀하듯, 교회에도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은사로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지요. 바울은, 은사는 주님이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이요, 받은 은사를 잘 이용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기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은사를 소개하며, 은사를 나타낼 방법을 말하지요.
첫 은사가 예언인데, 예언은 앞날을 예측하는 말로 주로 알지요. 그것도 있으나, 하나님 말씀이 예언입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셨고, 다 이루셨으며, 남은 예언은,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지요. 믿음의 분수대로는 성경 말씀을 알고, 이해하는 대로, 예언의 은사를 활용해야지요. 성경을 분에 넘치게 판단하고 전하지 말라 합니다. 넘치면 이단으로 빠지곤 하지요.‘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어, 뭐야? 섬기는 일도 은사야?’
은사라 하면 방언이나 치유 같은 특별난 것으로 알던 이들은 이상하게 여기지요. 섬기는 일도 은사요, 억지로 섬기는 체 말고 마음을 다해 섬기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예수께서 소자 하나를 돌보면 나를 돌보는 것이라 하신 것과 같지요.‘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학교 선생님만 아니라, 나이 든 이가 젊은이를, 먼저 믿은 이로써, 초신자를 가르치는 일도 있지요. 믿음의 좋은 본이, 가르침이요, 우리 일상의 어느 곳이나, 가르치는 장소이니 성의껏 감당해야지요.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를 보면서 판단합니다.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자신이 평소에 남을 잘 위로한다면, 은사로 알고 위로에 힘써야 합니다. 세상이 갈수록 변화가 심하고 나눠지며 냉랭해져 가기에, 믿는 이가 먼저 나서서 위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귀하지요.‘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남을 도울 때는 성실과 진심으로 합니다.‘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부지런함에는 기꺼이 하라는 뜻이 담겼으니, 함부로,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다스립니다. 이번 지방 선거에 그런 분들이 당선되면 좋겠지요.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예수 믿으니 남이 볼 때 긍휼을 베푸는 체해야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구원받은 성도는 은혜에 감사하며 즐겁게 이웃에 긍휼을 베풉니다. 이를 성도가 먼저 합니다. 말씀 9절부터는, 바울는 교회 내의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먼저, 거짓 없는 사랑을 말하며‘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거짓 사랑은 악한 것이요, 참사랑은 선이지요. 어떻게요? 형제를 사랑하여, 형제는 교우를 말합니다.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다른 교우에게 그리하면, 그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지요. 교회는 주님의 사랑 받은 성도들이 모여 사랑을 훈련하고 실천한 후에, 나가서 가정과 이웃에 그 사랑을 전하는 곳입니다. 이어서, 초대교회가 여러 핍박을 당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던 것은 천국 영생의 소망이지요. 오늘날도, 어려움이 많은데, 그것을 기뻐하며 이겨내게 하는 것은 영생 소망입니다. 성도는 환난을 겪을 때, 인내하며 천국을 더 소망하기 때문이지요. 평안하면 천국이 멀어집니다.
이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씁니다. 초대교회 때는, 믿는 이들의 생활이 거의 어려웠으니 쓸 것을 공급하고, 여관 같은 것이 없으니, 복음 전도자들을 재우고 돌봐야 했지요. 오늘날, 세상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믿는 이가 말씀에 의지해 먼저 대접하면 세상이 따뜻하게 변화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하다 보면, 세상에 나가서 안 믿는 이에게도 하게 되지요.
14절 이후 말씀은,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에 살며 보일 삶의 모습을 바울이 가르칩니다. 말씀 전에 우리가 미리 마음에 담을 것은, 예수 믿은 후, 우리는 육에서 영으로 변화하며 영의 사람이 되어가야지요.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육의 사람으론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가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박해히는 자를 안 보고 지내는 정도 아닐까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을 소망하는 영의 성도로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그건 말도 안돼.’할 수 없지요. 마음을 열고 그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축복하면 축복으로 돌아오고, 저주하면 저주로 돌아온다고 하지요. 다음 말씀은, 앞의 말씀에 비하면 한결 가볍지요.‘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그런데, 사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것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현대의 특징의 하나가 단절이지요.
주위에 보면, 형제 자매간에도 만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친구나 친척도 멀게 살지만, 성도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그리 살기에 힘써야지요. 마음에 담을 것은,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말고, 믿는 이가 먼저 다가갑니다. 함께 웃고 우는 삶, 아릅답지요. 이어‘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현실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마음을 낮은 데 두기는커녕, 교만하고, 누가 더 교만하나 키재기를 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좀 낫다 싶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이 못하면 비굴하거나 시기하는 인간 마음이지요. 그런 세상이지만, 주님의 낮아지심을 아는 성도는 주님의 마음으로 매사에 겸손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어떤 이가 잔치의 상석에 앉았더니, 주인이‘저리 내려가 앉으세요.’하고, 낮은 자리에 앉은 이에게 주인이 와서‘저 상석으로 옮기세요.’하지요.'겸손하라.'이지요.
이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가끔 듣는 말에‘그가 내게 악하게 했으니, 나는 열두 배로 갚아 주리라. 내가 그보다 무엇이 못 해.’성경에 열둘이란 숫자가 자주 나오지만, 성도가 할 말은 아니지요. 성도들이 악한 일을 당해도 되도록 선으로 갚기에 힘쓸 때, 예수 믿는 이는 과연 다르다 합니다. 믿고 천국을 소망하니 달라야지요. 최소한, 교회 다니는 이가 더 짠돌이고 깐깐하고 자기밖에 몰라, 그래선 안 됩니다.
미국의 한 도시에 고아원을 홀로 운영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연말에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당장 먹을 것도 없으니, 고아들이 바라는 성탄 선물은 생각도 못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고아들의 바람을 생각하며, 연말 분위기로 흥청거리는 술집에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모금하려 했지요, 그런 중에, 한 주정뱅이가 일어나 소리 지르며‘시끄러워. 누가 술맛 잡치냐? 이거나 먹고 꺼져.’하며 술잔을 던집니다.
‘앗’하는 순간에, 술잔이 날아와 부인의 얼굴을 때려 얼굴이 찢어지고 피가 흐릅니다. 난데없는 사건에 술집 손님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부인이 어떻게 하나 숨죽이며 봅니다. 부인은 수건을 꺼내 흐르는 피를 닦고, 깨진 술잔 유리를 주워들며 빙긋 웃습니다. 그리고는, 부인은‘고맙습니다. 이 술잔은 제게 주는 선물로 받겠습니다. 그런데 가여운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선물로 주시겠습니까?’일순간 침묵이 흐른 후에‘와!’하고 함성이 터지며,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테이블 위에 놓습니다.
술잔을 던졌던 술주정뱅이의 테이블 위에는 지갑 하나 남아 있고 그는 사라졌습니다. 지갑 곁에 남긴 메모에‘불쌍한 고아들에게’써 있었지요. 그 부인이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비슷한 경우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말씀에 돌아가 몇 가지 더 살펴보면‘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성경 다른 곳에, 예배드리려다가 화해해야 할 사람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돌아와 예배드리라 합니다. 신앙생활에 행함이 중요함을 안 것이지요.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길‘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하셨으니, 자신이 원수 갚으려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합니다. 그리하면 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이어 잠언에 있는‘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자신이 잘못한 걸 아는데 상대가 잘해 주니, 창피해서 숯불이 머리 위에 있듯 얼굴이 붉어지지요. 이 일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먼저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의 맺으며‘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이 본을 보이신 분이 십자가 예수님이시고, 그 십자가로 우리가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셨지요. 우리는 자주 저 십자가를 바라보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훗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분입니다. 그러니,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하세요. 받은 은사를 잘 발휘하세요. 은사는 쓰면 쓸수록 더 커집니다. 받은 은사라도 쓰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지요.
말씀을 나누는 중에‘나는 그렇게 살지 못해.’하는 것이 여럿 있을 텐데, 거기서 그치지 말고‘난, 할 수 있어, 그리 살아야 해.’로 마음을 새롭게 하세요.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다시 꼭 기억할 것은 자신이 영의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천국 영생을 소망하며, 작은 일부터 이렇게 살므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