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군대를 전역한 이후, 2016년 즈음부터 나의 마음을 지배해온 감정은 부끄러움과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었다고,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생각듭니다.

이번 복학 전 휴학은 저의 두 번째 휴학인데, 첫 번째 휴학은 군 전역 이후 2015년 12월부터 2016년 2학기 전까지의 기간이었습니다. 사실, 전역 후 저는 본 전공인 기계공학과를 포기하고 예술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이 시작되면서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곧바로 개인연습실을 대여해서 입시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생활은 한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한 생각이 서서히 다가와 저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너는 인간적으로 부족해서 너가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곧바로 연습실 생활에서 뛰쳐나와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했던 어떤 일도 이 마음에서 저를 벗어나게끔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즈음부터 철학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데, 주변 친구중에 이런 얘기를 할 만한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 친구와 주로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그 해 2학기에 복학한 이후 그런 관심에서 부전공으로 철학수업을 조금씩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를 사로잡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할 해결책은 철학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단번에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고, 정신적 평안을 회복하나 싶다가도 다시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파서 또다시 해야할 일들을 져버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해버리고, 또한 음악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실, 학사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사유로 휴학하는 것은 규정상 되지 않지만, 작년 1학기가 끝날 때 도저히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또다시 도망쳐버렸습니다. 당시 나올 때는 1년 동안 학교에서 벗어나 나를 괴롭게 하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마음의 갈등은 하찮은 욕심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열심히 자신에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학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의 갈등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제 안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이 헛 된것은 아니었을까? 모종의 변화가 제 안에서 서서히 일어나 점점 저를 물들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예전의 저와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을 봅니다. 저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며 또한 개인적인, 제 마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들을 가능한 한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합니다.

요즘 저에게는 ‘내려놓음’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굶주린 짐승처럼 날뛰는 자아의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제 안에 이전부터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청정한 마음, 그 마음을 점차 되살리고 그 마음으로 살아나가도록하는 것이 제가 지켜가야 할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성령체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제가 느낀 이 마음이 성령의 씨앗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 고린도전서 13장 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너무나 유명하기도 한,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아직도 저는 어린아이와 같고 장성한 사람이 되는 길은 심히 고통스러울 것임을 예감합니다. 하지만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르도록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더 느낍니다. 이 길을 따름으로써 나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휴학했음에도 다시 입사를 허락해주신 장로님께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감 태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