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방학은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긴 방학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방학 때도 공부에 찌들어 학교에 갇혀 있었던 지옥같았던 때였지만, 그 때를 벗어나 이렇게 편하게 집에서 쉬고 다시 학교에 가니까 정말로 기쁘고 좋다. 이번 여름방학 잘 쉬고 잘 먹었지만, 그 동안 겪은 체험이 많은데 떠올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1.아버지와 함께 수도 공사한 일

 

 

 

우리 교회는 내가 어릴 때 식당이 없어서 교회 밖 우물을 길어다 물을 쓰곤 했다. 그런데 식당이 생기고 우물도 차츰 쓰지 않자 김장을 하거나 청소를 할 때도 항상 식당 설거지 하는 곳을 이용하다보니 번거롭고 좀 그랬다. 그래서 아빠는 내가 여름방학 때 집에 오는 겸 같이 수도공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8월 초 중순 약 두 주일 간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진행 과정은 짧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만들 수도의 규격을 줄자로 재고, 교회 문 옆에 있던 화단을 허물고, 벽돌을 날라 담을 만들고 그 속을 흙으로 채우고 그 위에 모래를 채우고, 벽돌 사이에는 레미탈 도료로 메우고 모래 위에는 또 레미탈 도료를 물에 섞어 삽으로 퍼다가 메웠다. 힘들었던 점은 작업을 한 번 할 때 얼마나 도료랑 벽돌이 필요한 지 모르니까 하다가 부족하면 다시 나가서 사오는 일을 한 두 세 번 연달아 반복해야 했다. 안 그래도 더운 땡볕 아래서 작업하는데 나르고 또 나르고, 갔다와서는 모래를 또 날라야 하니까 현기증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그냥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중간에 속으로는 짜증나고 힘들어도 아빠한테 화를 내진 않았다. 나보다 더 고된 작업을 나서서 하시고,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끝나고 저녁 시간에 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작업해야 할까 아버지한테 물었던 적은 있었다. 아버지는 '안하려고 해서 그렇지, 하려고만 하면 해야 할 일이 보이는 것들이 산더미 같이 많다. 그리고 수도공사를 해 놓으니까 얼마나 편하냐.'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지금 학사에 와서 개강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로 깨닫게 되는 말씀인 것 같다. 1학기 때는 한편으론 게으른 생활을 했었으나, 2학기 때 조금 정신을 차리고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는 마음을 먹고 학사를 왔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생활을 하다보니 일 분 일 초가 뭐를 해야겠다 뭐를 해야겠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일이 많아서 하루의 반을 잠으로 채우던 그 전과는 완전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2.'천로역정' 영화를 교회에서 감상했던 일

 

 

 

교회에서 몇 주전에 광고 시간에 25일에 천로역정 영화를 함께 본다고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하셨고, 그를 위해서 교회 여러 장비들을 아버지와 함께 손봤다. 스크린은 잘 나오는데, 앰프와 노트북을 잇는 선이 연결이 안 되서 이거 또한 작업을 일일이 해야 했다. 천장을 뜯어서 낚싯대로 저 멀리 프로젝터 쪽으로 선을 가져가 연결하고 선을 다시 천장 밑으로 내리는 작업이었다.

 

얼마 후 교회에서 영화를 봤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세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교회수련회를 가서 ?었던 '나니아 연대기 1', 여름방학 숙제로 영화관에 동생이랑 아빠랑 같이 가서 봤던 '디 워',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신비감에 젖어서 ?었던 '인터스텔라' 이 세 가지. 나머지 영화는 뭐 보긴 했지만 그렇게 뇌리에 많은 신비감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에 봤던 천로역정이라는 영화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많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천로 역정은 존 버넌이 쓴 기독교 소설인데, 이번에 영화로 각색해서 나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크리스천이라는 인물이 나와서 기존의 성읍에서 벗어나 천국의 여정을 밟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 우리 학사생들에게 한 번은 꼭 봐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보면 감동도 느낄 수 있고, 내가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가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새로이 느끼고 깨달았던 점들은 다음과 같다.

 

1)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은 고독하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우리의 인생이 알고 보면 고독한 마음의 여정임을 말하듯, 영화에서도 혼자서 걸어가야 하는 믿음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크리스찬이 가족을 설득해서 함께 가자고 하지만, 가족은 쉽게 천국의 사실을 믿지 않았고 결국 혼자 여정을 떠난다. 영화 끝부분에서 크리스찬이 가족을 걱정하자 조력자는 그들의 믿음은 그들만의 믿음의 여정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2)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은 혼자만의 고독한 여정이 아니다. 우리는 고된 길을 혼자 걸어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길의 여정에는 항상 하나님이 내 옆에서 나를 보좌해 주신다. 나도 내가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많이 의지했었고,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 주시고 힘들 때마다 내 고민을 풀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서 더욱 더 그 믿음이 강해진 것 같다.

3)하나님의 세계는 우리가 알던 세계와 많이 다를 수 있다. 내가 창세기를 읽으며 의문을 가졌던 점은 ‘성경에서 말하는 1일이 우리가 말하는 그 1일일까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공룡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텐데 지금까지 시간이 약 몇 억이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면 크리스찬이 걸어가는 여정 속에서 많은 신비롭고 이색적인 공간들이 나온다. 우리가 모르는 신비로운 존재들도 같이 말이다. 결국 영화를 보면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4)구원은 결국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영화를 보면서 더 확실해진 것 같다.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도 얻을 수 없고, 착하게 산다고 천국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보혈과 그를 통한 구원을 믿어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이 믿음이 이 영화를 보면서 더 강해지고 확실해진 것 같다.

5)쉬운 길보다는 좁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며, 그래서 누구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리고 이 길을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란 쉬운 것은 아니며, 중간에 나에게 얹혀진 짐들은 이 여정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하지 않고 꿋꿋이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천국에 이른다는 영화의 내용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많은 유혹을 맞닥뜨리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혹을 뿌리치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이 다짐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학사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정말 많기 때문이고, 삶의 여정이 힘들지만 그래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몸소 간접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