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딤전 1:3-9 설교:‘교훈의 목적’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나서 마게도냐를 여행하던 중,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것입니다. 교회를 돌보는 일에 관해 썼기에, 디모데후서, 디도서와 함께 목회 서신이라 하지요. 디모데에 대해 알아봅니다. 행 16:1-3을 함께 읽습니다.‘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 인 줄 다 앎이니라.’디모데는,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중에 만났는데,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이나 아버지는 헬라인이지요. 아버지가 헬라인이라 할례를 받게 합니다. 훗날에는 예수 믿을 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었으나, 당시는 선교 초기이고 디모데가 교회에서 앞장서 이끌 일꾼이라 할례를 받게 한 거지요.
하나 더,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일곱 집사를 택할 때 칭찬받는 자여야 한다고 했는데, 믿는 이는 주위의 칭찬을 받아야 하지요. 욕을 먹거나, 저밖에 몰라, 저 사람은 안 보면 좋겠어, 그래선 안 됩니다. 또, 딤후 1:5을 읽지요.‘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어서 당시 흔하지 않던 외조모와 어머니 두 여인의 이름이 성경에 올라 널리 알려졌습니다. 외할머니가 딸에게, 딸이 아들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전했지요. 당시 성경책이 없으니, 믿음을 성경 말씀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했을 겁니다. 훗날‘누구 믿음은 그 어머니, 아버지의 믿음을 이어받은 것이야.’하면 좋겠지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믿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귀한데, 교인 중에 그리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적다면 왜 그럴까요?
1절에, 바울은 자신이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하지요. 박해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삼으신 것을, 예수의 명령이라 합니다. 박해자였던 바울을 사도라고 믿지 못하는 곳에, 예수의 명으로 사도 된 바울이라고 밝혀서, 편지의 권위를 나타내었지요. 디모데에게‘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디도서 시작에도‘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아들 된 디도’라고, 우리에게 익숙한 참아들이 거듭 나옵니다,
히브리서에는‘징계를 받지 않은 자는 나의 참아들이 아니라.’예전 성경에 그랬는데, 새 번역에는‘친아들’이라 바꿨지요. 숭덕을 시작하신 고 박 목사님이, 이 말씀에서 숭덕의 참아들을 정하셨다 봅니다. 참아들, 딸이 되려면, 디모데의 삶을 알고 따라야겠지요? 이어서‘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바울 편지 대부분에‘은혜와 평강’이라 인사했는데, 여기는‘긍휼’불쌍히 여김을 추가하였지요.
그 이유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면서, 영지주의자나 유대주의자의 박해를 심히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영이 중요하고 몸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몸이 나쁜 짓을 하더라도, 영으로 구원받는다 함으로, 교인들이 솔깃했지요. 아닙니다. 바른 믿음은 몸도 깨끗해야 합니다. 유대주의는 예수님이 유대인이니 유대인만 구원받을 수 있고, 이방인이 구원받으려면 할례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요. 영지주의와 함께 초대교회 때 선교에 큰 방해가 되어, 디모데를 괴롭혔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보낸 이유를 말합니다. 다른 이에게 명해서 복음 외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지요. 당시 이방 지역에 널리 퍼졌던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와 비슷하게 성경 말씀을 전했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을 그리스의 제우스신처럼 신화로 전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요, 신 중의 신이니 다른 것과 비교하지 말라. 또 하나는, 성경에 길게 나오는 유대인의 족보이지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야곱의 열두 아들을 외면서, 자신이 누구의 후손이라며 자랑했지요. 그런 신화와 족보 이야기는, 하나님의 경륜인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말만 많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바울은, 대신에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전하라 하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믿음인데, 오늘날 교인 중에 그리 생각지 않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이 교훈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먼저, 청결한 마음이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거짓이나 탐욕이 없는 청결한 마음으로 바뀌어 가야지요. 예수님도 중하게 여기셨기에, 팔복에‘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셨고,‘사람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요 나오는 것이 더럽다.’속이 더러우니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십니다. 둘째로‘선한 양심’이지요. 양심은 진리를 좇고, 지키는 마음으로, 우리 속에 있으며 우리 생각과 행동을 주장하는데, 교회 다니며 선한 양심이 자라야 합니다.
셋째로, 거짓 없는 믿음이지요. 거짓이나 헛된 것을 믿거나, 교인인 체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사랑이 나온다 하지요. 사랑이 부족하면, 이것을 보충하고 챙겨야 풍성한 사랑을 이웃에 베풀 수 있지요. 기독교의 사랑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말씀을 보면, 바울이 율법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데,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바울이 전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거짓이라 했기 때문이지요.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 맞고, 율법대로 하면 선한 것이지요. 그런데,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불법한 자,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 허물 많은 자 등에게 잘못을 범하면 벌 받음을 알려줍니다. 또 하나 알 것은, 많은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는데, 허물 많은 인간이라 그럴 수 없으니, 율법으로 구원을 못 받지요. 율법을 잘 지키거나,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천국 가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율법에 대해 가르친 후, 오늘의 주제인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하지요. 교훈이 복음에서 나온 것이기에,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을 받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겁니다. 말을 바꾸면, 거짓 복음을 전하고 들으면, 복은커녕 저주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지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씀으로,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직 복음만 듣고 따르라 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하지요. 바울은 일평생 자신이 과거에 한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바울은, 그런 자신이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은, 바울이 믿지 않았을 때 알지 못하고 행했기 때문이라 하지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는 중, 바울에 대해 질문받을 때를 대비한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바울은 예전에 믿는 자를 박해하고 복음을 부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떻게 그런 자가 사도되었고, 당신이 그의 제자로 전도할 수 있소?’그럴 때‘그런 일이 있었지만, 바울이 예수를 믿지 않아 모르고 한 일이요. 박해자 사울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그를 만나셔서 복음 전할 사명을 주셨고, 그 후 바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바울은 디모데가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 미리 가르쳐 대비하게 합니다.
딤전 1:14절을 함께 읽지요.‘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믿는 이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주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을 주님께 감사하고, 남의 허물을 지적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주거나 약점을 보완해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 은혜 아래 믿음과 사랑으로 살기 때문이지요.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봄날 들판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연못을 지나는데 조그마한 아기 거북이가 볕을 쬐려고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들고 있는 긴 막대기로 거북이를 찔러 보고픈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안 돼!’하는 외침을 듣고 막대기를 집어 던진 채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였지요. 다 듣고 난 엄마는, 대견한 듯 아들을 안으며“사람들은 그런 소리를‘양심의 소리’라고 한단다. 앞으로도 그런 소리가 계속 들려와, 너를 바른길로 인도해 줄 거야.
하지만 만일 네가 귀를 막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소리가 점점 희미해져서 나중엔 전혀 들리지 않게 된단다. 살면서 그 음성을 듣고자 애쓰며 순종하기 바란다.”이까지는 예수 안 믿는 이도 같지요. 그런데, 믿는 성도로서, 속에서 나는‘주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과 함께 내게 넘치도록 풍성해,’를 항상 듣고 살면, 성도답게 살 수 있지요.‘내가 마음먹고 한 것이 아닌데, 저절로 그리하네.’멋지지 않습니까?
오늘 주제인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는 그리 살 수 있습니다. 그 바탕은 어디서 올까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임하셨기 때문이지요. 바울은 이 말을 하면서‘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예전에 사울로서 한 일을 생각해도 괴수, 두목이라 하겠지만, 지금 은혜의 밝은 빛 가운데 섰기에, 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겁니다. 우리도, 세상의 어둠과 죄 가운데 머뭇거리지 않고, 점점 더 밝은 빛으로 나가면, 바울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적어도‘난, 아무 죄도가 없어.’란 말은 못 하지요.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까닭은, 전에 일은 오래 참으시며 주를 믿는 자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면서, 하나님, 예수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하지요. 우리에게, 우리 허물과 부족함을 주님이 아시면서도 참으시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믿음의 좋은 본으로 안 믿는 이를 구원하라는 겁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가르쳐준 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하면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한 후매네오와 알렉산더를 내가 교회에서 쫓아내 사탄에게 넘겼다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필요할 때, 단호한 조치를 하라는 거지요. 사랑의 기독교지만, 때론 엄격해야 교회를 지켜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기억하고, 바울의‘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을 마음에 담으며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주위에 믿음의 좋은 본을 보이며 삽니까? 칭찬받는 자로 사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왜 그런가? 살펴서 잘못을 바로 고쳐나가야지요. 교회 다니는 햇수가 쌓여 갈 때, 내가 억지로라도 이렇게 해야지, 아니라, 생각 없이 그저 했는데, 성도답게 거룩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네, 그러면 좋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그렇게 살기 위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을 키워가며 거기서 나오는 참사랑을 주위에 베풀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믿음이요, 주위에 믿음의 좋은 본을 보이는 것이요,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