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행 6:1-15 설교 제목:“집사를 뽑음”
시작의‘그 때에’는, 성령이 강림한 후, 믿는 이들이 많이 늘어날 때인데, 제자는 열두 제자가 아니라, 신실하게 예수를 믿는 이들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외국에 살다가 돌아와 히브리어를 못 하는 히브리인과, 유대 땅에 살아도 히브리어를 못 하는 이지요. 헌금이 들어와 매일 구제했는데,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낫다는 교만함에,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구제에서 빠뜨려서 그들이 원망합니다.
구약 성경에, 과부, 고아, 나그네를 잘 보살피라 했지만, 초대교회의 사랑이 충만한 곳에도 이런 그늘진 곳이 있었지요.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보통 생각하면‘헬라파 과부들에게 더 신경을 써서 구제에 빠지지 않게 하세요.’할 것 같으나, 열두 사도는‘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사도들은, 자신들이 말씀 사역에 힘쓰지 않아, 교인들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그런 일이 있다고 본 거지요.
아울러, 계속 늘어나는 교인들을 생각할 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곱 집사를 택함으로, 집사들이 구제하는 일을 맡음으로,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려는 것이지요. 오늘날 집사의 시작입니다. 사도들이 말한 집사의 요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지요. 성령이 충만해야 하는 것은, 롬 8:9에‘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교회 집사를 택하는 것이니,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또, 고전 2:14에는‘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그러니, 집사는 성령 충만해야지요. 이어‘지혜가 충만한 사람’인데,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혜롭게 사리를 분별하여 처리하면,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구제에 빠뜨리지 않지요.‘칭찬받는 사람’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칭찬을 받는 사람인데,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인격적으로 균형 잡힌 이들입니다.
직분자가 아니라도, 주위에서 칭찬받는 것, 귀하지요. 이 외에도, 예배 시작 때 읽어드린 딤전 3장에 집사의 자격이 나옵니다. 집사들은 정중하고, 행동에 신중해서 자기를 잘 다스리며, 잘난 체하거나, 겉으로만 점잖은 체하지 않지요. 남에게 겸손하며 마음으로 다른 이를 잘 섬깁니다. 이어, 일구이언하지 않으며, 이 사람에겐 이 말, 저 사람에겐 저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이 말한 것이 누구에게나 분명하고 말대로 잘 지키는데, 집사가 주로 하는 일이 교회의 재정을 맡는 것이라, 신실함이 꼭 필요하지요.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집사가 술에 취하면 말이나 행동에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아니하며, 공금을 횡령하는 일을 말하는데, 돈을 만지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그런 사람은 집사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도, 무리의 총무로서 돈을 만지다 보니, 때때로 훔쳐서 썼고 그러다가 그런 일까지 했지요.
이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은 거듭난 자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려 하고, 그렇지 못하면 양심에 찔려 회개합니다. 믿음의 비밀은, 그저 신비한 무엇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믿은 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지요. 우리가 아는 복음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이라 한 것은, 복음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진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음에‘먼저 시험하여 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시험은, 집사 후보의 진실성과 구원의 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봉사의 사명을 부여받은 거룩한 직분이라 엄정하게 시험해야지요. 그래야만,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이 집사직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두가 합력하여 활동할 수 있습니다.
여자 집사에 대해서는, 정숙하고, 행동이 경건하고 바르며, 참소하지 말며, 참소는 남을 비방하는 행동이지요, 절제하며는 세상 것에 취하지 않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거지요. 모든 일에 충성은 신실함인데, 거짓이 없으며, 어떤 일을 할 때, 끝까지 희생적으로 봉사합니다. 믿는 이, 아니, 사람이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부담을 느끼지 말고, 조용할 때, 오늘 말씀과 딤전 3:8-11을 찬찬히 살펴보며, 나 자신은 어떤가를 살피며, 부족한 걸 고쳐가면, 더 직분자답게 삽니다. 주위에서 칭찬합니다.
이런 집사 일곱을 택하라 합니다. 성경에서 성스러운 수, 완전수라 여기기에 일곱을 택했다 봅니다. 일곱은 셋 더하기 넷인데, 셋은 하늘의 성부, 성자, 성령이요, 넷은 땅의 동서남북이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포함하니 완전수이지요. 하나 더, 집사들을 사도들이 정하지 않고, 교인들이 택한 것은, 기독교는가 처음부터 민주적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사도들의 말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했는데, 살펴보지요. 스데반은‘면류관’이란 뜻인데,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은 최초의 순교자로서, 행 6장에 이어 7장에 길게 소개되지요. 빌립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빌립과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에 최초로 전도했으며, 에디오피아 내시를 예수 믿게 하고 세례를 베풀었지요.
해안 쪽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의 네 딸도 예언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이번에 체포된다고 했고, 그대로 되었지요. 다른 이는 성경에 나오지 않음으로, 전설에 의해 소개하지요.‘브로고로’는 외경인‘요한행전’의 저자로 전해지며, 베드로에 의해 니코메디아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말 나옴 김에, 성경을, 정경, 외경, 위경으로 구분하지요. 많은 책 중에서 종교회의를 거쳐, 우리가 가진 성경 66권이 정경입니다.
정경과 다르나,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을 외경, 하나님 말씀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위경이라 합니다. 기억하며 따라 합니다. 정경, 외경, 위경.‘니가노르’는 승리자란 뜻이고‘디몬’은 보스트라의 감독으로 섬기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바메냐’는 빌립보에서 순교했다 합니다.‘안디옥 사람 니골라’는 이름 뜻이 백성의 정복자인데, 훗날 배교해서 이단인 니골라 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열두 사도가 이들에게 안수하고 집사로 세웠지요. 안수는 선택된 자의 외적 표시이자, 그 직무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입니다.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서 손을 떼고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자,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한때 예수님을 죽이고 믿는 이를 박해하던 제사장 중에서도 예수 믿는 이가 많아졌지요.
이어, 스데반 집사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다고 하는데, 집사의 조건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뽑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다고 하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면, 은혜와 권능이 따라서 충만함을 알려줍니다. 우리에게 귀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잘 믿는 이는, 항상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고, 어디서 성도답게 살아야 하지요. 거친 세상에서 성도답게 사는 것이 귀한 권능입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하며 기쁘게 찬양하지요. 권능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돌봅니다. 그런 성도로 살려면, 함께하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서 주님의 지혜를 갖춰야지요. 이어지는 말씀에, 스데반 집사가 여러 지역에서 온 이들과 토론을 하는데‘자유민’은 포로로 끌려갔다가 풀려난 이인데, 그중 구레네인은 아프리카 북부 구레네에서 온 이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지자 십자가를 대신 진 이가 구레네 시몬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애굽 북쪽의 해안 도시로 유대인들이 많이 가서 살던 도시이고,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로마 식민지로서 수도가 다소인데, 바울의 고향입니다. 아시아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말합니다. 그곳에서 온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논쟁하는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니 그들이 능히 당하질 못합니다. 말로 안 되자, 사람들을 돈 주고 사서,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들었노라 하게 합니다.
나아가,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잡아 와서 공회에 심판하러 세우지요.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그들이 고발한 것이, 스데반이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않는다고 합니다. 거룩한 성전에 대한 말은, 전에 예수님이‘내가 이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하신 것으로, 46년 걸려 세운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사흘에 세운다고 했다고 뻥쟁이로 예수님이 고소를 당했지요. 스데반이 그런 예수의 말을 전한다는 거지요.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율법을 고치려 했고, 스데반이 그걸 전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후 사흘 후에 부활하셔서 새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을 몰랐지요.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는 것인데 모르니까, 스데반을 정죄한 것입니다.
15절에, 스데반이 공회 중에서 말할 때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성경 말씀에, 시내 산에서 올라가 기도하고 내려 온 모세의 얼굴이 너무 빛나서 사람들이 쳐다볼 수 없기에 천으로 얼굴을 가렸고,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빛났었지요. 스데반의 얼굴이 심한 박해에도, 천사의 얼굴과 같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며 항상 주님과 동행하였기에, 스데반의 얼굴이 그런 것이지요.
우리 얼굴은 어떻습니까? 평안한 얼굴과 초조 불안한 얼굴이 있는데,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며,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과한 욕심이나 미움과 시기를 내려놓으며, 영생 천국에 대한 확신으로 살면, 가난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평안한 얼굴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 살기 위해, 성령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순종하며, 주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성경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다 연관이 되지요. 자주 거울 보면서, 내 얼굴이 어떤가? 남이 내 얼굴을 어찌 볼까, 생각해보세요.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 어려움과 아픔, 주위의 속상한 일로 도저히 평안할 수 없어. 내가 평안하려 해도 누구 때문에 안 돼. 아닙니다. 다른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 기도하며 주님의 지혜를 구하세요.‘주님, 제게 평안해서 빛난 얼굴로 살게 도와주세요.’귀한 기도지요. 스데반은 박해를 당해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때 박해받아 각지로 흩어진 성도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요.‘살기 힘들어, 예수 복음을 못 전해.’아닙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데반의 죽음이 옳다고 증인석에 있던 사울은, 얼마 후 다메섹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복음의 전파자 바울이 되었지요. 그의 머리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하던 스데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어찌 저럴 수 있을까?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라면, 믿는 이를 박해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 사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니, 주저하지 않고 박해자가 전도자가 되었지요. 여러분도 스데반의 빛난 얼굴을 항상 기억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세요. 다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누릴 자요, 직분자입니다. 자신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자인지 자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가며, 아름다운 직분자로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