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5일 낮 예배 설교
성경: 히 13:1-6,15,16 제목:“성도로서 할 것과 말 것”
지난 주, 예배 후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그래’할 때, 머리를 아래위로 흔드는데, 인도사람들은 좌우로 젓는다고 합니다. 티브 프로에 나온 인도인이 그렇다 했답니다. 헷갈리게 하지요.‘그래’이쪽은 아래위로, 저쪽은 좌우로,‘대체, 그렇다는 거야, 아니야?’전에, 제가 무역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사람을 만나면서, 어느 나라나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기쁠 때 울고 있으면, 헷갈리지요. 너무 기뻐 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한 방향으로 살아야지, 어떤 이는 이리로, 어떤 이는 저리로, 다른 모습을 보이면, 주위의 안 믿는 이들이 헷갈리지요.‘도대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이야?’우리는 숭덕교회를 다니며 한 교회의 교인들로서, 한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성도로서 한 모습을 보이는 것,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하고 중심인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입니다.
오늘말씀의 앞, 히 12:28 끝부분을 보면‘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했고요, 16절 끝에도‘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이런 경우, 그 안에 있는 말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내용입니다. 교회의 올해표어‘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성도로서 마땅히 할 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를 혼자 버려두지 않습니다.
13장 1절 이하에 나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이웃과 관계, 우리 각자, 하나님께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먼저, 이웃과의 관계에서‘형제사랑하기를 계속하고’형제사랑, 이웃사랑, 성도간의 사랑을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뉴스를 보신 분이 많겠지만, 며칠 전, 개신교계에서 존경받는 사랑의 교회의 옥 한흠 목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신문에, 그분을 추모하는 글에서, 옥 목사님은 믿음과 삶의 일치를 강조하셨고, 그를 위해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전파하셨다 합니다.
우리 교회도, 자주 믿음과 삶이 함께 해야지, 밥 따로 국 따로, 따로국밥 같이 믿음과 삶이 다르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요? 제가 계속 기도하며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믿음과 삶이 일치하게 살도록, 여러분을 인도하는가 입니다. 사실, 주일 한 시간 예배드리고, 믿음과 삶이 일치하기는 어렵지요. 불가능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두질 않고, 우리가 믿음대로 살만큼 강하질 못합니다. 세상 따라, 몸이 시키는 대로 살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제자훈련을 해야 할까요? 우선 할 수 있는 길은, 여러분이 말씀을 들은 만큼이라도, 행하기에 힘쓰는 것이지요.
오늘, 형제사랑하기를 계속하라, 들었으면 행하기에 힘쓰고, 그러면 믿음과 삶이 일치합니다. 그러나, 들어도 행치 않으면, 믿음 따로 삶 따로 삽니다. 형제사랑이 많지만, 오늘말씀은 초대교회의 특별한 상황을 두고 말합니다. 2절의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것이 써진 초대교회 때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믿는 이가 늘어가는 중에, 기독교박해가 심해지고,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여기, 손님대접은 예수 믿는다고 쫓겨난 이들을 잘 대접하며 돌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나거나, 집을 뛰쳐나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숭덕학사가 일본에 있을 때 계셨고, 교회와 학사를 사랑하시는 이 종성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 이름 종성은 종소리란 뜻으로, 절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집안인데, 이 목사님의 큰 누나가 예수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집에서 온갖 박해를 해도, 틈만 나면 교회에 가는데, 아기인 이 목사님을 본다며, 업고 교회에 달려가곤 했습니다. 아기는 영문도 모른 체 교회에 다녔습니다.
결국은 집안의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가출을 했는데, 대구에 가서 어느 성도의 돌봄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그렇게 업혀 다니던 아기, 이 목사님이 한국 신학계의 대표적 지도자요, 장신대의 학장을 세 번이나 연임하면서 많은 목사를 양성했습니다. 누나가 믿지 않았으면, 업고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면, 집을 나온 누나를 잘 거둬주는 분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손님을 대접하면, 여럿 좋습니다. 말씀에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입니다.
무더운 날, 길을 지나는 이를 정성껏 대접했는데, 그들이 천사들이었고,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란 기쁜 소식과 함께 소돔이 죄로 멸망할 것을 가르쳐줘서, 아브라함은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의 가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칼빈 선생은‘대접한다고 해서 매번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누가 질문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을 대접할 때, 천사를 대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대접하는 것이라 대답하겠다.’예수님도, 작은 소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라 하셨지요.
3절에는,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형제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떤 박해를 당했는지 잘 알려주는 히 11:36-38을 읽습니다.‘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박해받은 성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편하게 믿고 있지요.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그런 박해는 없으나, 복음을 위해 박해당한 선배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돌봐야 합니다. 또한, 나도 아프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임을 생각하며 돌봅니다. 지금은 내가 건강하고 여유가 있더라도, 언제 나도 그런 어려움에 처할지 모릅니다. 내가 그라고 생각하면, 더 정성껏 돌 볼 수 있지요. 또,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지체이므로, 한 성도의 아픔은, 내 손에 가시가 찔리면 아프듯, 내 아픔으로 여기며 돌봐야 합니다.‘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은 자를 생각하라’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내가 아프고, 사는 것이 힘들어, 난 아무도 돌볼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어려운 이를 외면한다면, 냉랭한 교회가 되고, 주위에서 교회가 뭐 저래? 소리를 듣게 되지요.‘네가 내게 관심을 먼저 가지면, 나도 가져 줄게.’아닙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돌봐야 하고, 먼저 시작해야지요. 하나님 기뻐하십니다.
다음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은, 4절에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하시며, 음행, 간음하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 또한, 당시의 실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성적으로 몹시 문란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심지어 로마황제의 황후가 밤에 길에 나가 쾌락을 위해 몸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런 속에, 성도들이 순결을 지키는 것은, 기독교가 퍼져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순결은 부부간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세계로 퍼져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귀족들이, 자신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면서도, 후손은 깨끗이 이어지길 바라며, 순결한 기독교인 며느리를 택한 것입니다. 며느리가 훗날 그 가정의 안주인이 되고, 어머니로서 귀족인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니, 로마의 지배층에 기독교인이 많아지고, 마침내 로마가 기독교국가가 된 것이지요. ‘결혼의 순결을 지켜라, 육체의 정욕에 빠지지 말라, 한 마음을 가져라, 하나님만 섬기며 사랑하라’성도가 음란하지 말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신랑이고, 성도는 신부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이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라고 합니다. 돈을 멀리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탐욕을 부리지 말라,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딤전 6:10에는‘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라 하고, 탐욕이 곧,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유태인들이 돈을 좋아하지요. 한 유태인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이번에 산 복권이 당첨되면 반을 바치겠습니다.’여러 번 시도해도 당첨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하나님께 똑 같이‘복권이 당첨되면 반을 드리겠습니다.’기도를 드렸는데, 한 번 만에 거액이 당첨 되었습니다. 친구가‘자네 기도의 응답을 받았으니,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할 것인가?’‘아니네, 확실히 유대교의 하나님이 더 전지전능하시네. 왜냐하면, 개신교 하나님은 복권에 당첨 돼도 내가 반을 바치지 않을 것을 몰랐지만, 유대교의 하나님은 아시고, 당첨이 안 되게 하신 거라네. 나는 유대교에 계속 머물 거네.’요사이도,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는 이들, 꽤 있지 않습니까?
탐욕은 신앙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하고, 바로 서면 돈 욕심을 버립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5,6절 말씀입니다. 5절에는, 신 31:6 말씀을 인용해서‘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6절은 시 118:6을 인용해서‘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강한 믿음 위에 서면, 있는 바를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릅니다.
미국의 강철 왕이요 부자였던 카네기는, 어느 신문기자가 방문해서, 청년들을 위해서 성공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자, 서슴치 않고“성공의 첫째 비결은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요. 나는 늘 가난한 생활을 한탄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분발심이 솟아‘가난, 이놈, 어디 두고 봐라, 부모님을 근심 시키는 가난을 없애 버리고야 말겠다.’결심하고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했소.”잘 들어두세요. 가난은, 마음먹기에 따라, 딛고 일어 설 좋은 발판이 됩니다.
이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15절에,‘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가 구원을 받고, 천국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합니다. 주일교회 나와서만 아니고요, 언제 어디서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찬양합니다. 시편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살아 숨 쉬는 자들은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자주 살아있음을 찬양으로 확인하기를 축원합니다.
한 중국선교사가 선교현장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는데, 간절히 기도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습니다. 일단, 고향인 영국에 돌아가 새 힘을 충전해서 중국에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고향에 왔는데 한 동료선교사가 가정에 초청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며, 벽에 걸린 액자에 써진‘범사에 감사하며 찬양하라’를 보자마자, 마음에 확 와 닿는 것이‘내가 어려움에 좌절하기만 했지, 감사하고 찬양한 적이 없구나.’그는 번민과 좌절을 접고, 어려움 가운데도 감사와 찬양을 시작하자, 모든 일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중국에 돌아와서, 중국성도들에게‘감사와 찬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를 선포하였는데, 듣는 이들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찬양을 통해서 술술 풀려나갔습니다. 찬양은 나를 바꾸고, 주위를 바꿉니다. 무엇을 찬양하나요? 15절 끝에, 그 이름을 증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찬양합니다.‘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변함이 없으시고, 날 사랑하십니다.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그 앞에 나오는 자에게 상주십니다.’
하나님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요, 찬양이지요.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니, 어둠이 빛으로 변하고, 길이 보입니다. 이어, 16절에‘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에, 성도가 오직 선을 행하기에 힘쓰고, 악한 마음은 품지도 말고, 악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선인지는 대개 아시지요? 알면 해야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합니다.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하면 부담스럽지만,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서로 나눠주는데, 누가 먼저 해야 할까요? 상대가 할 때까지 기다리나요? 믿고 은혜 받은 자가 먼저 나눠줘야 합니다. 물론, 돈만 아니고 시간과 마음도 나누어야 합니다.
16절 끝에‘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하는데, 제사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15절에 찬송의 제사, 16절에 이 같은 제사라 했는데, 왜 제사라 했을까요? 초대교회 때는, 몇 년 전까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의 제사를 드리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소나 양을 끌고 가서 죽이고, 피를 제단에 바르고 고기를 태우면서, 피 냄새와 고기 타는 냄새가 자욱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제대로 드렸다던 기억을 할 때지요. 제사의 외형에 미련이 남습니다.
요사이, 성전이 잘 꾸며지고, 많은 교인과 성가대원이 있고, 엄숙한 순서와 많은 예물이 바쳐져야 은혜로운 예배라는 마음을 가진 분들과 비슷하지요.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외형적인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찬양의 제사요, 오직 선한 일을 하며 서로 나눠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제사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전투에 나가는 사울 왕에게, 적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다 죽이라고 하나님이 명하셨는데, 사울 왕은 좋은 양과 짐승을 자기를 위해 살려 두었습니다. 사무엘이‘저 짐승들은 왜 살려두었느냐?’‘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요.’사무엘이‘순종이 제사보다 낫다’하나님은 예배보다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함으로 신앙생활을 다 했다, 아니지요. 예배에서 찬양한 것이, 한 주간 내내 삶 속의 찬양으로 이어지고, 기도한 것이 이어지고, 들은 말씀이 삶 속에 행함으로 나타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은혜를 받고 깨달은 이입니다. 믿음에서 은혜로, 은혜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행함으로, 바른, 꽉 찬 신앙생활이요, 그것이 믿음과 삶의 일치입니다.
이제 가을의 문턱인 9월의 첫 주에, 우리 각자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서 힘찬 출발을 다짐하기 바랍니다. 오늘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말씀드렸으나, 하나로 모아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내 몸 같이 돌봐야합니다. 형제자매를 내 몸 같이 돌보는 성도는 순결한 자입니다. 순결한 자는, 돈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돈이 나를 지키지 못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성도는 탐심이 없고, 어려운 이웃을 정성껏 돌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 아닙니까? 이렇게 사는 성도는 입에서 찬양이 떠나지 않습니다.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이 오네, 기쁨이 오네.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숭덕의 교우 여러분‘그래, 옳아’할 때, 다 함께 머리를 아래위로 끄덕하듯이, 신앙생활도 같은 방향, 같은 내용으로 하기를 축원합니다. 남이 안 하니까, 나도 안 해, 아니고요, 누가 먼저 하면, 나도 할 거야, 아닙니다. 내가 너무 아프거나 어려운데 남을 돌 볼 겨를이 어디 있어, 아니지요. 십자가에 달려서 그 고통 중에 홀로 남는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한 예수님을 기억하면,‘나는 못해’사라집니다.
말씀드린 대로, 신앙생활은 여러 가지를 기억하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마줄기를 당기면 고구마가 연달아 올라오듯,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하다가 보면, 믿음과 삶이 하나 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삶으로 산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모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